▲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8월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강 이상으로 쓰러져 9월 9일 정부수립 60주년기념 행사에 나오지 않은 이래 그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최근 김 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 개교기념 축구대회를 관람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또 그가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매우 위급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심장질환과 당뇨병 등으로 고생하고 있어서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앞으로 그가 건강을 회복하면 후계자 선정이나 후계체제 안정이 쉬워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북한의 장래가 매우 불안해질 것이다.

독재국가에서 최고통치자가 사망하거나 유고(有故)인 경우 리더십 공백을 메우려는 권력투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과거 김일성은 자신이 환갑을 맞이하는 1972년에 이미 아들을 비밀리에 후계자로 선정해 자신의 사후 권력투쟁을 예방했다. 그러나 김정일의 나이가 66세이지만 후계자를 선정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가 후계체제를 안정시키기 전에 사망하면 권력투쟁이 예상되고, 남북관계가 어려워질 수 있다.
한편 독재국가의 특성상 김정일의 후계자가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가진 인물이 되느냐에 따라 북한의 운명이 달라진다. 마오쩌둥(毛澤東) 사후 덩샤오핑(鄧小平), 브레즈네프 사후 고르바초프의 등장이 각각 중국과 소련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처럼 김정일 후계자가 개혁 리더십이냐 여부가 북한의 장래는 물론 남북한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럼 우리 정부는 북한의 리더십 교체와 관련해 어떤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 나가야 하나? 김정일 후계체제에 관해서는 매우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하지만 복잡한 현상을 단순화시켜 보면 그의 후계체제가 안정을 확보하는 경우와 불안정해지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전자를 목표로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 이유는 김정일이 사라지더라도 북한이 동서독 통일처럼 남한에 흡수 통합될 가능성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는 동독처럼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는 잘못된 신화가 있다. 즉, 동독의 호네커 정권이 붕괴하자 동독사회주의체제가 붕괴하고 나아가 동독이라는 국가가 소멸한 것처럼 북한의 김정일정권이 사라지면 북한사회주의체제가 붕괴하고 북한이라는 국가가 소멸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북한은 동독과 달리 강한 군대가 있고, 중국의 지원이 여전하며, 한국전쟁의 나쁜 기억이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동독에는 35만 명의 소련군대가 7만 명의 동독군대를 통솔하고 있다가 고르바초프가 소련군대 완전 철수를 결정하자 동독군대는 독자적인 지휘능력이나 작전능력이 없어서 주민 소요를 통제하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 군부는 사회주의체제를 수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동독의 경우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후견인 역할을 포기했으나 북한은 아직도 중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리고 동서독 간에는 전쟁을 치룬 적이 없으나 북한주민들은 6·25때 한국군으로부터 희생을 겪은 후 북한지도층이 주민들의 대남 적개심을 북돋우었기 때문에 동족이지만 유사시에 남한을 선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더욱이 대부분의 북한주민들은 외부세계와 단절돼 아직도 남한의 실상을 완전히 모르고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김정일 후계체제가 안정을 얻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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