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흔치않은 풍경이 됐지만 옛날에는 가을걷이가 끝나기 무섭게 이삭을 줍는 사람들로 논밭이 붐비던 시절이 있었다. 볏단을 하나 둘 걷어들일 때마다 일부터 이삭 한 두 개쯤을 흘려 남겨두면 다음날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그 이삭을 주워 끼니를 때우는 것이다.

그런데 지주들이라고 해서 모두 이삭을 남겼던 것은 아니다. 인색한 지주네 마름들은 일꾼들이 행여나 낱알 한톨이라도 흘릴까봐 `귀한 양식을 들쥐한테 줘서는 안된다'며 괜한 들쥐 핑계를 댔다. 그러나 그럴수록 농사꾼들은 얄미운 심정에 이삭을 줄줄 흘리며 볏단을 묶었고 그래서 오히려 인색한 지주의 논에 가야 이삭을 많이 주을 수 있었다. 콩 한 쪽이라도 나눠먹자는 옛 조상들의 인심은 `고수레', `까치밥'과 같은 풍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삭두기가 가난한 이웃에 대한 배려였다면 까치밥은 날짐승들을 위해 나무에서 열매를 거둘 때 꼭 서너개를 남겨두는 미덕이다. 사람들은 까치밥을 먹는 새와 다람쥐에게 내년에도 풍년들게 해달라고 기원하며 땅에서 자란 열매를 함께 나눠 먹는 공존공생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이다. 또 산천에서 무엇을 먹을 경우 주변에다 밥 한술을 뿌려 풀, 벌레, 산새가 함께 먹고자 했던 고수레가 있었다. 이 풍습은 땅에서 곡식을 얻기까지 사람의 정성만이 아닌 흙과 비와 바람이 함께 했으니 천사(天食)에 감사해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조상들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천사는 하늘 천(天), 먹여줄 사(食). 즉, 천지가 우리를 먹여 살린다는 뜻으로 옛날 사람들은 궁핍한 생활속에서도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던 것. 예기치 못한 태풍의 기습으로 사상 초유의 재산피해와 수재민들이 발생했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수재민들을 돕고자 하는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니 참으로 흐뭇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 옛날 산새며 풀벌레와 함께 나누어 먹던 인심이 수재민들에게도 전해져 마음만이라도 풍요로운 추석명절을 맞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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