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상현 인천 남구을 국회의원(한나라당)

 지난 12일 미국과 북한이 핵 검증 의정서에 합의하고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함에 따라 위기로 치닫던 6자회담에 순항의 전기가 마련됐다. 8월 이후 북한의 핵시설 복구조치와 함께 6자회담의 붕괴까지 거론되던 상황에 비하면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번 합의는 미국이 ‘완전하고 철저한’ 검증이라는 기존 원칙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고, 특히, 지난 몇년 동안 한국 정부의 북핵폐기에 대한 요구가 미국 조야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 북한이 이번에 합의한 핵 검증 의정서를 보면 ‘신고된 시설’은 미국의 검증방식에 협력하지만 우라늄 농축프로그램(UEP)과 플루토늄 보유량, 핵무기 등은 ‘미신고 시설’로 분류해 상호동의 하에서만 검증을 받게 돼 있다. 결국, 검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미신고 시설’에 대한 검증은 북한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신고 시설’에 대한 검증은 사실상 할 수 없고 하게 되더라도 추가적인 협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005년 9·19공동성명에는 ‘핵무기’를 포함한 북한의 ‘모든 핵’이 폐기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또한,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초기 부시정부의 정책도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해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인 2007년 2·13합의에서는 ‘핵무기’가 언급돼 있지 않고, 지난 6월 제출된 북한의 핵 신고서에도 ‘핵무기’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다.
여기에 검증문제마저 미국이 북한과의 합의를 통해 ‘신고된 시설’을 검증하고 향후 북한의 동의 하에 ‘미신고 시설’에 대한 검증을 하겠다는 것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핵 폐기’에서 ‘핵 관리’로 완전히 선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북한을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으로 용인하게 되는 것이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북한과 대립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 동안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여 왔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미국은 북한의 의도대로 항상 이끌려왔다. 클린턴정부 시절 핵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동결’하는 대가로 경수로를 약속한 일이나 부시정부가 철저한 ‘CVID’의 원칙을 사실상 포기한 점, 또한, ‘불능화’의 개념을 도입하고 그 ‘불능화’마저 원자로를 영구히 못 쓰게 한다는 개념에서 1년 정도 못 쓰면 족하다고 후퇴한 점, 여기에 북한의 달러 위조와 마약 판매 등과 같은 불법자금에 대한 ‘BDA’ 북한자금동결을 큰소리치다 쉽게 해제한 점 등을 볼 때 북한이 생떼를 쓰면 미국은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번 핵 검증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인 스티븐 해들리조차 ‘북한이 제출한 북핵 신고내용은 불완전한 것’이라고 표현할 만큼 문제가 있었지만 미국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시리아의 핵확산이 반드시 포함된 ‘완전하고 철저한’ 검증이라는 기존 원칙을 포기하고 ‘분리 검증’이라는 완화된 검증 안에 싸인을 함으로써 북한의 의도에 또 고개를 숙이고 만 것이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공조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북핵관리’ 정책을 취하는 미국과 우리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다. 미국은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다양한 입장을 취할 수 있지만 북한과 대치하며 생명이 담보돼 있는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북한의 핵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향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북핵폐기’와 ‘검증문제’에 있어 단호한 입장인 일본과의 공조를 통해 ‘완전하고 철저한’ 검증과 ‘북핵폐기’의 기존 원칙인 ‘CVID’가 지켜질 수 있도록 외교적 역량을 총 동원해 미국을 압박해 나가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한·미·일 공조는 우리가 미국의 ‘북핵관리’ 정책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미국이 우리의 ‘북핵폐기’ 정책에 따라오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 미국의 뜻에 속수무책으로 따라가면 결국 북한은 사실상 핵 강성대국이 될 것이고, 만약 그렇게 될 경우 누가 우리의 운명을 책임질 것인가? 대단히 불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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