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중심이 자본주의 체제로 확고해짐에 따라 물질적인 풍요는 이뤘지만 인성이나 철학처럼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나 도덕적 관념이 등한시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일찍이 막스 베버가 이야기한 천민자본주의의 단상일 것이다.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하더라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풍요로운 마음 씀씀이가 없다면 천한 천민의 얼굴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지속적인 재무컨설팅으로 성실하게 살고 있는 30대 중반의 고객과 상담을 하게 됐는데 무리를 해서라도 아파트를 옮겨야겠다고 했다. 빈손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이라 월세를 전전하다가 국민임대아파트에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뜻밖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파트 단지에 초등학교가 두 개 있는데 일반아파트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가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일반아파트에 사는 학부모들이 임대아파트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보내기를 꺼려해 학교를 두 개 지었는데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를 생각하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일반아파트 전세로 옮기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아무런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얼마나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식으로 선을 긋고 다른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면서까지 자신의 자녀들에게 잘못된 교육을 시키는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요즘 아이들이 영악하고 이기적이며 버릇이 없는 것이 모두 부모들의 잘못이었던 것이다.

사실 계층을 나누는 것은 기득권 세력들이 그들의 권력을 대물림하기 위한 방법이다. 현재 추진 중인 국제중학교나 자립형 사립고 등은 이른바 가진 자들의 자식들이 입학할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상 많은 돈을 투자한 만큼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고 그렇게 모인 아이들은 또다시 그들만의 인맥을 형성하며 사회에 진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가 이제는 보편화돼 지방의 작은 아파트 단지에까지 뿌리내리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며 단순히 천민자본주의의 확산에 대한 우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독한 양극화의 고착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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