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당초 7일부터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했던 제10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무산시킨 이유는 이라크전, 특검법 등 국내외 악재속에서회담 개최로 인한 `실익이 거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러나 북한은 민간 차원의 대화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어, 남북 당국간 냉기류와는 달리 민간차원 교류는 차질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서울에서 개최된 3·1절 민족공동행사에 종교인을 대거 보낸 데 이어 지난달 중순과 하순 평양에서 `2003년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노동자 대표자회의'와 `남북한·해외 동포학자 통일대회'를 예정대로 진행했다. 또 여러 경로를 통해 6·15 남북공동선언 세돌을 계기로 평양 민족통일 대축전을 비롯한 다채로운 행사 개최를 강조하고 있다.

이번 장관급 회담은 새정부들어 처음 열릴 남북 고위급 회담으로 향후 남북관계의 가늠자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국내외의 주목을 끌어왔다.

정부 당국자는 “국내외 악재가 없었다면 북한으로선 이번 회담이 핵문제로 인한 북미관계 악화속에서도 노무현 대통령 정부와 `좋은' 관계를 맺고 남북교류협력사업의 강도를 한단계 높일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라며 “북한은 회담을 앞두고 치밀하게 손익계산을 한 뒤 현 단계에서 장관급 회담 개최는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어차피 이라크전 개전, 한미 그리고 주변국간 북핵문제 논의, 특검법 등의 외생변수가 발생한 이상 이런 변수들의 추이를 지켜보며 장관급 회담 재개여부에 관한 입장을 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의 장관급 회담 거부 움직임은 대북송금 관련, 특검법 국회통과에 대한 강한 반발을 통해 어느 정도 예견됐으며 이라크전이 터지면서 더욱 구체화됐다.

실제 북한은 지난 2월말 특검법이 한나라당 등 야당의 주도로 국회를 통과하자 지난달 4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명의로 “특검법 도입 강행은 남북관계를 동결상태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북한은 이어 지난달 22일 이라크전에 따른 우리 당국의 대응조치를 문제삼아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경제협력제도실무협의회 2차회의와 3차 해운협력실무접촉(3월26일~29일)을 연기시켰다. 지난 31일 예정이던 경의·동해선 철도 연결식도 일방적으로 무산시키고 한미합동 군사연습에 대해서도 계속 불만을 제기했다.

특히 북한은 10차 장관급 회담회담 개최일 하루전까지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신 지난 5일 북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은 남북대화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남측에 `대화와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해 현 시점에서 당국간 대화가 어렵다는 뜻을 간접 표현한 바 있다.

학계 관계자는 “이번 회담 개최가 무산됐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다른 채널을 통해서라도 지난달말 한미, 한일 외무회담에서 조율한 북핵해법을 바탕으로 북측에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미국의 입장이 북핵문제를 다자간 회담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종전의 레토릭(수사)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북한이 우리측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31일 잭 프리처드 미국 대북교섭 담당대사와 한성렬 북한유엔대표부 차석대사가 뉴욕에서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북한이 미국의 다자대화 제안을 즉석에서 거부하지는 않았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해 북측이 `다자대화에 (일단)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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