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호철 경기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지금 경기도의회 4층이 환하게 밝았다. 의회건물의 밤불이 꺼질 줄 모른다. 의회가 집행부라고 칭하는 경기도청 실·국과 사업소, 경기도교육청, 시·군 교육청의 전기불도 의회 4층 불이 꺼진 후 1시간이 지나서야 스위치를 내린다. 경기도의회 스위치가 도청과 교육청 전원스위치를 관리하는 ‘컨트럴박스’라고나 할까. 하지만 도의회 등불이 꺼진 후 30분 또는 한 시간 이후에 꺼지기 때문에 ‘인공지능 컨트럴박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경기도의회 4층 회의실은 바로 2009년 경기도 예산 12조9천588억 원, 도교육청 예산 8조968억 원 등 모두 21조 원의 짜임새를 가로줄과 세로줄이 잘 짜였는지 염색은 잘 됐는지, 무늬만 장황한 것은 아닌지, 실용성은 있는지 세심히 살피고 있다.

그러면 먼저 4층 회의실의 모습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위원장석에서 보아 왼쪽에 이 의원, 남 의원, 김·김·김 의원(3명), 박·박 의원, 송 의원이 자리를 잡았다. 왼쪽으로는 백 의원, 정 의원, 김 의원, 신 의원, 염 의원, 이·이·이 의원(3명)이 자리를 잡는다. 부위원장, 간사 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고 다른 예결위원은 성과 이름의 가나다 순으로 자리를 정하기 때문이다. 위원장 건너편에는 도와 도교육청의 실·국장이 앉는다. 실·국장 옆에는 과장이 자리잡고 뒤편에는 사무관, 주사들이 포진한다.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이 있다는데 마치 전장터의 군사배치를 연상하게 한다.

전장터 장수와 군사들이 화약과 방패와 무기를 들었다면 의원들은 화약이요 창이고, 공무원들은 방패요 성벽이다. 질문으로 공격하고 답변으로 수비한다. 장수인 실·국장이 답변이 궁해지면 여지없이 보충대가 날아든다. 뒤편에 앉아있던 사무관, 주사들이 문서를 보내기도 하고 과장인 서기관들은 귓속말로 작전을 전한다. 가끔은 실·국장이 잠시 쉬고 과장이 나서기도 한다. 과거에는 실·국장이 답변석에 서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했지만 지금 실·국장은 의원과 같은 눈높이로 앉아 마이크를 잡고 답하고, 과장들은 발언대에 나와서 질문에 대응한다. 구체적이고 상세한 내용은 과장들이 답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위원장으로서 과장의 답변을 자주 권하는 편이다.

정말로 예산을 심의하는 데는 망원경도 필요하고 현미경도 있어야 하며 비이커와 시약도 동원해야 할 것 같다. 예산을 심의하면서 우리 의원끼리도 놀란다. 과거 고가에 물품을 구입한 것 같다며 직접 시장조사를 해온 의원이 있는가 하면 설계의 허점을 캐내는 전문가 도의원도 있다.
예산안 심의는 실로 전쟁이다. 실전이다. 집행부는 예산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결전이다. 예산은 삶이다. 공무원의 목표다. 사업부서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예산을 삭감당하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을 깎이는 일인가보다. 과거 ‘복지부동’이니 ‘복지안동’이니 하면서 공무원의 무사안일을 탓하던 때가 있었지만 요즘 예결특위 회의실 주변에서 복지부동은 없어 보인다. 밤 11시가 되어도 공무원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잠시 휴식시간에 복도에 나서 보니 옆 사무실에는 회의실 뒤편에 배석한 공무원보다 더 많은 공무원들이 보인다. 이거 예결위원 18명으로는 숫자적으로 밀리는 전쟁이 아닌가 당혹스러울 정도다.

경기도의회 예산결산위원회는 12월 1일부터 12일까지 12일간 열린다. 하루에 3개 실·국 정도를 심의하고 있다. 질문답변이 마무리되면 예결위원 중에서 계수조정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소위원회 위원장을 뽑아 최종 심의에 들어간다. 여기에서 삭감과 조정이 이루어진다. 심의 결과는 12월 16일까지 본회의에 올려져서 의결되도록 지방자치법 제127조에 정하고 있다. 21조 원의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의 살림살이가 정해지는 것이다.

내년 1월 1일부터 집행될 예산은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 공무원들의 정열이 담기게 된다. 여기에 도의원들이 상임위 예산검토를 통해 예산을 숙성시키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층 검토를 통해 완성될 것이다. 지금 경기도의회는 밤을 낮 삼아 예산을 심의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의원들이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여보! 오늘 또 집에 못 들어갈 것 같다.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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