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위는 10일 최종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허 일병은 84년 4월2일 강원도 화천 7사단 3중대본부 내에서 벌어진 술자리에서 만취한 선임하사관이 오발한 총에 맞았고 이후 살아있던 상태에서 총 2발을 추가로 맞아 숨졌으며 중대장 등이 이를 자살로 은폐·조작했다”며 그 동안의 조사 결과를 확인했다.
진상규명위는 재미법의학자 노용면 교수에 법의학 감정을 의뢰한 결과 “허 일병의 왼쪽 가슴과 머리부분 총상 모두에 출혈이 있는 것으로 미뤄 2~3번째 총상때까지
심장박동이 있었던 듯하며 허 일병이 첫 발을 맞은 후 7~8시간 생존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들었다고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또 당시 허 일병 사체를 부검한 박모씨도 “오른쪽과 왼쪽가슴에 모두 생활반응(총을 맞았을 때 살아있었음을 나타내는 반응)이 발견됐으며 오른쪽 가슴에 총탄 한 발을 맞고도 7시간 가량 살아있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든다”고 진술하는 등 허 일병이 머리에 총상을 입을 때까지 살아있었음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진상규명위는 헌병대 수사결과와 관련, ▶사체발견현장에서 탄피가 두 발만 발견됐음에도 세 발이 발견됐다고 보고한 점 ▶수사과정에서 일부 사병들에 대한 강압수사가 이뤄진 점 등 여러 문제점을 확인했으나 이같은 수사과정의 문제점이 상부의 조작지시 때문에 이뤄졌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다.
진상규명위는 이와 함께 ▶누가 사건의 조작·은폐를 지시했으며 어느 선까지 개입했는지 ▶애초 타살혐의를 두고도 헌병대 수사 과정에서 자살로 결론이 내려진 경위 등에 대해서도 기간부족 등의 이유로 확인하지 못했다며 향후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위는 두 발의 총탄을 누가 발사했는지와 첫 총탄을 맞은 허 일병이 사체 발견지점인 폐유류고까지 누구에 의해 어떤 식으로 옮겨졌는지에 대해서는 `일부의 진술이 있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상황을 특정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들어 공개하지 않기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한편 허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씨는 위원회 발표 직후 “완전한 결론이 난것이 아니라 섭섭하기는 하지만 시간이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어쩔수 없다고 본다”며 “법개정으로 조사시한이 연장돼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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