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은 역시 한가위와 설이다. 특히 설은 추석과 더불어 부모를 찾아뵙기 위해 민족의 대이동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큰 명절의 의미를 새롭게 새겨봤으면 한다. 또 이날 즐기는 세시풍속과 시절음식은 무엇이 있는지도 알아보자.

◇설의 유래

   
 

설이 언제부터 우리 겨레가 명절로 지내게 됐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중국의 역사서인 ‘수서(隨書)’에는 신라인들이 새해의 아침에 서로 예를 차려 축하하고 왕이 잔치를 베풀며 일월신에게 절하고 예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년)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년)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참배했다고 한다.

이때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과 비슷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신라 때에도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포함된 큰 제사를 1년에 6번씩 지냈다고 하는데 이를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생겼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시대에는 설을 9대 명절의 하나로 즐겼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을 4대 명절의 하나로 지내 이미 이때에는 설이 지금처럼 우리 겨레의 큰 명절로 자리잡았을 것으로 보인다.

◇설날의 세시풍습
▶설빔=설날 때 입기 위해 준비한 옷을 ‘설빔(세장, 歲粧)’이라 한다. 차례를 지낸 뒤 대보름까지 갈아입지 않기도 했다. 특히 어린이들은 설날 색동저고리를 입는데, 이것을 ‘까치저고리’라 한다.
▶차례 지내기, 성묘=아침 일찍 가족, 친지들이 한집에 모여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과 술을 조상들에게 대접하는 제사를 지낸다. 조상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향교나 산소를 찾아 성묘도 한다.
▶세배와 절하는 법(공수법, 拱手法)=새해 아침에 차례가 끝나면 마을의 어른들을 찾아뵙고 새해의 복을 빌며, 덕담을 나누는 인사의 관습은 오늘날에도 아직 남아 있다.
▶복조리 달기=조리장수가 설날 전날 밤부터 복조리 사라고 외치며 돌아다닌다. 각 가정에서는 밤에 자다 말고 일어나서 1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의 복조리를 사는데, 밤에 미처 사지 못한 사람은 이른 아침에 산다. 일찍 살수록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로 그해 행복을 조리와 같이 일어 얻는다는 뜻에서 이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문안비(門安婢)와 청참(聽讖)=사돈집 사이에는 부인들이 하녀를 서로 보내 새해 문안을 드리는데, 이 하녀를 ‘문안비’라 했다.
민가에는 벽 위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가기를 빌고, 설날 꼭두새벽에 거리에 나가 맨 처음 들려오는 소리로 1년간의 길흉을 점쳤는데, 이를 ‘청참’이라 했다.
▶야광귀(夜光鬼) 쫓기=야광(앙괭이)이라는 귀신은 설날 밤, 인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가버리는데 그 신의 주인에게는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귀신이 무서워 모두 신을 감추거나 뒤집어 놓은 다음 잠을 잤다. 그리고 채를 마루 벽이나 뜰에다 걸어뒀다. 그것은 야광귀신이 와서 채의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을 잊고 있다가 닭이 울면 도망간다는 재미있는 풍속이다.
▶오행점(五行占)과 원일소발(元日燒髮)=나무에 오행인 금, 목, 수, 화, 토 등을 새겨 장기 쪽같이 만들어 이것을 던져서 나온 것을 보아 점괘를 얻어 새해의 신수를 점쳤는데 이를 ‘오행점’이라 했다.
또 원일소발은 지난 1년간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상자 안에 넣어 뒀다가 설날 저녁에 문 밖에서 태우는 풍습이다. 머리카락을 태울 때 나는 냄새로 악귀나 나쁜 병을 물리친다는 믿음이다.
▶해지킴(수세, 守歲)=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믿었으며, 아이들이 졸음을 이기지 못해 잠들면 잠든 아이들의 눈썹에 떡가루를 발라 놀려줬다. 이것은 설맞이 준비가 바쁘니 이 한밤은 잠자지 말고 일해야 한다는 데서 생긴 말로 보인다. 섣달 그믐날은 자지 않고 설을 지킨다는 뜻으로 ‘수세한다’고 했다.

   
 
◇설날의 시절음식
세배하러 온 사람에게는 설음식(세찬, 歲饌)과 설술(세주, 歲酒), 떡국 등을 대접한다. 떡국은 꿩고기를 넣고 끓이는 것이 제격이었으나 꿩고기가 없는 경우에는 닭고기를 넣고 끓였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생겼다.
설을 쇨 때 반드시 떡국을 먹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떡국에 ‘첨세병(添歲餠, 나이를 더 먹는 떡)’이라는 별명까지 붙이기도 했다.
설날에 술을 마시는데 ‘세주불온(歲酒不溫, 설술은 데우지 않는다)’이라고 해 찬술을 한 잔씩 마셨다. 이것은 옛사람들이 정초부터 봄이 든다고 봤기 때문에 봄을 맞으며 일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에서 생긴 풍습이었다.
설에는 도소주(屠蘇酒)를 마셨는데 이 술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 오는 술이다. 도소주는 육계(肉桂, 한약재), 산초, 흰삽주뿌리(한약재 백출을 만드는 풀), 도라지, 방풍(한약재) 등 여러 가지 약재를 넣어 만든 술이었다. 이 술을 마시면 모든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설날에 즐기는 전통놀이
설날 아침 차례와 성묘를 지낸 다음 친척과 마을사람들끼리 모여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는데, 이 놀이들은 설날부터 시작해 설 명절의 마지막인 정월대보름날까지 즐겼다. 우리나라의 민속놀이는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집중돼 있다.
대표적인 놀이로는 윷놀이와 널뛰기, 연 날리기, 썰매타기, 팽이치기, 바람개비놀이, 쥐불놀이 등이 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하는 놀이로는 풍물굿이 어느 지방에서나 행해졌으며 지신밟기, 석전(石戰), 동채싸움(차전놀이), 나무쇠싸움, 횃불싸움, 달불놀이, 달집사르기, 고싸움놀이, 도깨비놀이, 횃불 싸움, 별신굿, 지신밟기, 거북놀이, 북청사자놀음, 광대놀이, 처용놀이와 계명(鷄鳴)점, 보리싹 점, 부름 깨기, 액연 태우기 등이 있다.
온 마을 사람이 나가 이웃마을 사람들과의 한 덩어리가 돼 즐기는 이 집단놀이는 각 개인과 가정, 마을 공동체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잔치다. 나아가 집약적 노동을 요구하는 농경사회에서 두레나 품앗이 등의 협동체계를 유지하려는 목적이 이러한 공동놀이 속에 있었다.
▶널뛰기=‘도판희(跳板戱)’라고도 한다. 두툼하고 긴 널빤지 한복판의 밑을 괘 중심을 잡은 다음, 널빤지 양쪽 끝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번갈아 튀어 올랐다가 발을 구르면 상대방은 그 반동으로 튀어 오른다. 이렇게 번갈아 두 사람이 튀어 올랐다가 발을 굴렀다 하는 놀이로, 높이 오를 때는 5∼6척까지도 튀어 오른다.
▶썰매타기=썰매는 눈이나 얼음판 위에서 저절로 미끄러져 가며 타게 만든 놀이기구로서, 설마(雪馬), 설매, 서르매, 산설매, 산서르매 등으로 부르는데 말이나 매처럼 빠르다는 뜻이다. 원래 썰매는 산간지방에서 겨울철 수렵과 물건 운반을 위해 만든 것으로 그 모양은 겨울철 스포츠의 하나인 스키와 닮았다.
스키라고 하면 외국에서 들여온 스포츠라고 알고 있지만 우리의 선조들이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던 생활도구였다. 지금의 썰매는 그런 전통을 응용해 어린이들이 타고 놀기 좋게 만든 것이다.
썰매의 형태로 가장 일반적인 것은 어린이가 앉을 만한 크기의 판자 밑에 각목을 나란히 붙여 대나무나 쇠줄을 박아 만든 것으로 눈이나 얼음 위에서 잘 미끄러지도록 구성돼 있다. 썰매를 탈 때는 송곳으로 양쪽의 얼음을 찍어가며 움직이거나, 방향을 바꾸고, 멈춰서는 동작을 취한다.
▶팽이치기=팽이는 축(軸)을 중심으로 둥근 동체가 회전운동을 하는 완구이다. 팽이치기의 시초는 도토리 따위를 돌려서 장난한 놀이 같은데, 이것을 연구해 발달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에서는 당(唐)나라 때 성행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것이 고려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져 일본에서는 팽이를 고마(高麗)라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으며, 종류도 나무, 대나무, 금속, 유리 등이 있고 모양도 다양하다.
옛날 시골에서는 아이들이 나무로 팽이를 직접 깎아 만들어 추운 겨울 강가, 연못, 논바닥 등의 얼음 위에서 팽이치기를 했다.

▶쥐불놀이=해마다 첫 쥐날(上子日) 또는 정월대보름 전날 농촌에서 논·밭두렁 등의 마른 풀에 불을 놓아 모두 태우는 풍습으로, ‘논두렁 태우기’라고도 한다. 이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쥐를 잡고 들판의 마른 풀에 붙어 있는 해충의 알을 비롯한 모든 잡충(雜蟲)을 태워 없앨 뿐만 아니라 타고 남은 재가 다음 농사에 거름이 돼 곡식의 새싹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한 소망이 담겨 있다.

또 민간신앙으로 보면 이날 불을 놓으면 모든 잡귀를 쫓고 액을 달아나게 해 1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윷놀이=‘척사(擲柶)’ 또는 ‘사희(柶戱)’라고도 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해오는 한국 고유의 민속놀이로 대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날까지 즐긴다. 부여족(夫餘族)시대에 5가지 가축을 5부락에 나눠 줘 그 가축들을 경쟁적으로 번식시킬 목적에서 비롯된 놀이라고 하며, 그에 연유해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 등에 비유한다.

▶연날리기=연날리기는 예로부터 세계 곳곳에서 즐겨오던 놀이이다. 대나무 가지를 가늘게 잘라 연살을 만든 다음 종이를 붙여 연을 만들어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가 연을 날린다.

연날리기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즐겼으며, 연줄을 서로 닿게 해 다른 사람의 연줄을 끊는 연싸움도 즐겼다. 그래서 연싸움을 즐기는 사람은 연줄에 돌가루, 구리가루, 사기가루 등을 발라 다른 사람의 연줄이 잘 끊어지도록 하는데 이것을 ‘갬치 먹인다’고 한다.

연을 띄울 때 ‘송액(送厄)’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는 글자를 써서 높이 띄워 실을 끊어 날려 보내는데, 이것은 질병, 사고, 흉년 등의 나쁜 액운은 멀리 사라지고 복이 찾아오도록 비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