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맞았다. 예년 같으면 설 선물 제조업체들이 특수를 누리고 유통업계가 호황을 맞을 시기이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작된 국가적 경제위기 상황은 1년에 단 한 번 돌아오는 설 특수마저 빼앗아 버렸다.

특히 인천은 제조업이 지역경제총생산액의 약 28%를 차지하고 있고 이 중 기계장비, 자동차제조업, 금속가공제품제조업, 전자부품 등 4개 업종이 절반 이상을 차지함에 따라 자동차산업의 침체와 맞물려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본보는 설 명절을 맞아 인천지역 제조업체 중 내외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꿋꿋이 내실을 다지고 도약의 기회를 준비하고 있는 인천지역 업체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바다로얄
‘남동공단 내에 웬 김 공장이야?’

   
 

설 특수를 누리고 있을 지역 내 기업을 물색하던 중 찾아간 ㈜바다로얄은 각종 부품 제조업체들이 즐비한 인천 남동공단 내에 자리잡고 있었다.
㈜바다로얄은 주로 1만 원대 김 선물세트를 생산, 판매하는 업체이다.

‘경기 불황을 맞아 실속 선물로 각광을 받는 김은 그래도 경기를 덜 타겠지’하는 맘으로 찾아갔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시설투자비로 10억 원 정도가 들어갔어요, 추석 때 매출이 그래도 좀 괜찮아서 이번 설 명절엔 돈 좀 벌겠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웬 걸요, 사업을 시작한 10년 이래 올 설 명절은 최악입니다.”
전홍식 대표이사는 10여 년 전 ‘바다로얄21’로 브랜드 등록하면서 이 일을 시작했다.

그 동안 수원에서 공장을 운영해오다 약 1년 전에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남동공단으로 옮겼다. 3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고 수산물 냉동저장시설과 3개의 전자동 생산라인을 갖추는 등 김 가공업체로선 제

   
 
법 규모가 크다.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김 등 저가 선물세트가 잘 팔리잖아요, 근데 오히려 지난해보다 매출이 30~40%나 떨어졌어요. 언론에서 불경기다, 소비 위축이다 하고 자꾸만 떠드니까 설 명절에 선물을 주고받는 정서마저 메말라버린 것 같아요.”
언론에서 경기 불황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바다로얄에서 생산하는 김의 상품명은 ‘서천김’.
㈜바다로얄은 ‘서천김’ 외에 김가루, 멸치세트, 다시마 등도 함께 판매하고 조만간 김밥용인 구운김밥김도 내놓을 계획이다.

‘서천김’은 서천에서 생산되는 최상의 재래김을 구입해 옥수수기름과 참기름을 섞어 발라 맛깔스럽게 구웠다. 요즘 김 한 상자는 대개 7장씩 들어간 10봉지이지만 ‘서천김’은 8장을 넣는다. 왜 다른 제품보다 한 장을 더 넣느냐고 물었더니 유통단계를 최대한 줄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김 가공업체가 가장 힘든 시기는 바로 요즘이다. 바로 원초를 집중 구매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김은 겨울철에만 출하를 해 원초가 이때 가장 싼데, 농수산물은 현금으로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더라도 어쩔 수 없이 6월에 한 번 더 구입한다. 전 대표는 1년에 10억 원 정도의 원초를 구입한다.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지만, 운영자금을 확보하는 게 가장 어려운 문제에요. 업종 특성상 한꺼번에 목돈이 필요한데 더 이상 자금을 끌어올 곳이 없어요.”

   
 

전 대표는 해양부에서 지정하는 ‘전통식품업체’ 선정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최고의 김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좋은 원초 확보가 관건인데, 저리로 3억~4억 원 정도만 지원받는다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바다로얄은 설을 일주일 앞두고 생산라인을 밤 9시까지 돌렸다. 김은 미리 생산해 둘 수가 없기 때문에 주문이 크게 줄긴 했지만 택배가 가능한 21일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인터뷰 도중에도 전화가 부리나케 울린다. 얘기가 자꾸 끊겼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지금 힘들지만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10년이 걸리든, 15년이 걸리든 ‘서천김’이 업종 최고의 제품으로 인정받도록 끝까지 해 볼랍니다.”
전 대표는 다짐하듯 눈과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박찬회화과자
한 송이의 꽃이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명품의 맛’이라고 해야 할까.

   
 

화과자는 찹쌀, 팥, 밀가루, 설탕, 한천 등 천연의 재료를 사용해 정교하게 손으로 빚은 전통과자.
‘박찬회화과자’는 인천시 서구 가좌동에 위치한 전통과자 제조업체이다.

‘박찬회화과자’ 직원들은 명절을 며칠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대다수의 중소기업과는 달리 휴일도 잊은 채 새벽 2~3시까지 연장근무를 했다.

대한민국 제과명장 1호인 박찬회 사장은 13년 전, 30년 넘게 일해 온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백화점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다가 아예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회사를 차렸다.

회사 운영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지만, 최고의 재료만을 고집하며 하나하나 작품을 빚듯 정성을 다하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화과자의 화려한 맛과 멋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시 찾아왔고 단골손님이 급속히 늘어났다. ‘박찬회화과자’는 최근 연 10%의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맛의 예술’을 빚어내는 작업장은 들어갈 때부터 남달랐다.

   
 
방문자는 마스크와 모자, 앞치마를 착용하고 먼저 진공청소기로 온몸의 먼지를 털어야 한다. 다음 신발바닥을 물로 세척한 후 에어샤워실에서 남은 먼지를 모두 털어내고 마지막으로 손을 깨끗이 씻는다. 직원들은 손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수시로 손을 씻는다.

화과자의 재료 선정부터 직원들의 세심한 관리까지 ‘박찬회화과자’에서는 장인 정신의 면모가 곳곳에서 엿보였다.

현재의 가좌동 사옥은 작년에 지하에 있던 공장을 5층 건물로 증축해 지었다. 증축 과정에서는 자금 부족으로 고전을 겪기도 했지만 약 8억 원을 들여 작업장을 비롯해 회의실과 여성 휴게실, 샤워실 등 각종 직원 편의시설을 두루 갖췄다.
‘박찬회화과자’는 현재 롯데·현대·갤러리아 등 백화점에만 입점해 있고, 선물세트로 화과자를 비롯해 과일만주, 초콜릿맛만주, 종합양갱 등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전체 직원은 본사 생산직 30여 명을 포함해 각 백화점 매장에 3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생산직에는 30년 넘게 한솥밥을 먹은 직원들이 수두룩하다.
박찬회 사장의 아내이자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박귀심 이사는 “회사의 수익은 직원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화과자가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듯, 직원들에게도 최상의 복지를 누리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박 사장 부부는 그간 직원들과 설악산, 한라산 등 국내는 물론, 중국 장가계와 백두산에도 함께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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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내내 직원들과 함께 화과자를 빚던 박 사장이 기자를 배웅하기 위해 처음으로 일손을 놓았다. 온종일 작업하느라 허리가 많이 아프겠다고 말을 건네자 박 사장은 “이것도 명절 한때인 걸요.” 설 대목을 치르는 노역이 힘들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헤어지면서 맞잡은 박 사장의 손길은 찹쌀 반죽처럼 보드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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