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가 함락되었다. 치열한 저항을 예상했던 사람들은 말을 잃어버렸다. 하기는 걸프전쟁이후 10년을 넘게 온갖 제재와 간섭으로 고립되었는데, 침략자들을 막아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전쟁이 가열되면서 편향적인 보도로 구설수에 올랐던 언론들은 이제 후세인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비추면서 침략을 미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은 `대통령의 타락'을 바로잡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한다는 명분이었다. 침략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이 잡듯이 뒤져도 대량살상무기가 나타나지 않으니 영문을 모르겠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이라크문제 해결의 주체는 유엔'이라고 선언하는 가운데, 교황조차 `하느님의 침묵은 결정적 개입의 전주곡'이라고 분개하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반전평화를 외치는 가운데, 침략자들은 바그다드로 쳐들어갔다.

그들은 왜 이라크로 쳐들어갔을까? 침략자들이 온갖 수모를 감내하면서도 뻔뻔스럽게 전쟁을 감행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 비밀을 밝히지 못한다면 약한 나라의 사람들은 언제라도 전쟁의 참화를 견딜 준비를 해야 한다. 일방적인 논리로 억지를 부리며 시도 때도 없이 총칼을 들이미는데 어느 누가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는 석유에 대한 탐욕 그리고 침체한 군수산업과 달러를 방어하려고 전쟁을 일으켰단다. 나아가 북한을 겨냥하는 이유도 실은 급부상하는 중국을 사전에 견제하려는 예방조치라는 것이다. 침략전쟁이 `이라크의 해방'이라는 가면을 썼지만 사실은 `돈' 때문에 벌어졌다는 뜻이다. 이런 말들을 그냥 흘려버릴 수 없는 이유는 전쟁은 곧바로 자본의 이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파괴뿐인 전쟁이지만, 파괴는 곧바로 복구를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전쟁에 드는 비용은 세금이나 채권을 발행해서 조달하며,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애국주의의 최면이 걸리게 된다.

전쟁이 침략자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는 마지막 수단이 아니라 자본의 이해 때문에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에서 군수산업의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으며 사회적인 연결고리까지 구축되었는데, 바로 군산복합체로 상징되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주기적으로 과잉생산의 위기에 빠지고 경제가 장기불황에 허우적거리면 사탄의 유혹처럼 전쟁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전쟁은 군수자본에게는 곧 호황을 의미하며 복구사업도 엄청난 프로젝트가 된다. 따라서 전쟁은 파괴와 복구라는 이중경로를 통해 과잉생산을 해소하고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현재 장기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유럽국가들과 일본은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면서 1%의 GDP성장을 목말라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신경제' 또는 `IT신화'를 떠들던 미국도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과잉생산이 넘치는데 위기감은 확대재생산 될 수밖에 없다. 이즈음에서 미국이 무수한 비판을 무릅쓰고 침략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느껴진다. 전후복구사업을 따내기 위해서 나라마다 결사적으로 달려드는 것도 똑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반전운동이 지구를 덮고 있지만 근본문제는 자본이다. 이윤을 위해서 전쟁하는 세월, 아직도 우리는 `사람의 세상'을 만들지 못한 것이다.

이갑영 본보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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