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저에게 제2의 고향입니다. 6·25전쟁 때 인천 앞바다에서 살아났어요. 지금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기적입니다.”
인천시 서구 경서동에는 인천 유일의 실버타운인 ‘인천실버타운’이 있다. 이곳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실버타운 내에 노인전문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500병상의 노인전문병원 및 한방병원, 대체의학연구소 등을 갖추고 있다.
인천실버타운의 노인전문병원 ‘해동병원’을 이끌고 있는 임융의(72)원장은 지난 1952년 6·25전쟁 당시 고향인 평양을 떠나 월남한 이후 지금까지 의사로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임 원장은 의사로서의 편안한 삶보다는 소외 당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의 삶을 택한 ‘진정한 의사’다. 그에게 그 동안 지나온 길과 앞으로의 목표, 비전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인천은 ‘제2의 고향’=“죽을 뻔 했던 제가 다시 살아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어요. 그때 결심했어요. 의사로서 평생을 봉사하면서 살기로.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한 계속 봉사하며 살 겁니다.”
지난 1952년 6·25전쟁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을 당시 중학교 1학년 13살 소년이었던 임 원장은 피난길에 부모를 잃었다. 부모의 생사는 불분명했지만 임 원장은 남한 어디에선가 꼭 살아 계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부모를 만나기 위해 월남을 결심했다.

그는 평양을 떠나 황해도 해주까지 혈혈단신으로 내려가 인천으로 향하는 피난배에 올랐다. 인천을 통해 서울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바다에 빠지면서 목숨을 잃을 뻔했다. 구사일생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그가 첫발을 내디딘 곳은 다행히 인천 앞바다였다. 그래서 인천은 그에게 제2의 삶을 열어준 고향과 같은 곳이다.

인천에 도착한 그는 부두 주변에서 막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중 우연히 부모님이 서울에 살아 계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부모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상경한 그는 서울 곳곳을 헤매다 영등포에서 극적으로 부모와 해우하게 됐다.

이후 임 원장은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의학도의 길을 걷게 됐다. 임 원장은 “인천 앞바다에서 살아 나오면서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며 “덤으로 사는 인생, 그 결심을 실천하기 위해 의사의 길을 걸었다”고 말했다.

▶한국 최초로 외국인 환자 치료=임 원장은 1964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복무 후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교토대학에서 임상폐생리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그는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의료원 등에서 근무하던 중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혜성병원’을 개원했다. 어려서부터 생각해오던 가난한 사람을 위한 봉사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개원 후 그는 난지도 난민들을 상대로 무료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이는 무려 10년 이상 계속됐다. 당시 치료에 들어간 비용만도 20억 원이 넘는 큰 돈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무료 진료를 계속할 수 있었다.

임 원장은 독특한 이력도 많이 갖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한국 최초로 외국인 환자를 초청해 치료한 첫 번째 의사라는 이력이다.
임 원장은 1990년 전국조소병원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그해 5월 소련에서 개최된 제1차 핵실험중지 세계대회 한국대표로 참석했다. 그곳에서 백혈병에 걸린 카자흐스탄 어린이들을 치료해 달라는 현지 의사들의 요청을 받고 백혈병 어린이들을 치료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됐다.
귀국 후 그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해외여행도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인 당시 외국인 환자를 초청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옛 소련 연방 소속이었다는 점은 일을 더 어렵게 했다.
그럼에도 임 원장은 포기하지 않았고,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그해 9월 카자흐스탄 백혈병 어린이 2명을 한국으로 초청, 치료에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임 원장은 카자흐스탄에 백혈병 어린이 치료를 위한 백혈병센터 설립에 나섰지만 카자흐스탄 내부 사정으로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집념은 연극 ‘알마아타의 사람들’로 극화돼 현지 사람들에게 소개됐고 이 연극은 지난 1994년 서울문예회관에서 다시 공연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천을 세계의 ‘의료허브’로=임 원장은 72세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노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임 원장은 “BT(Bio Technology)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며 “줄기세포 등 유전공학을 이용한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은 100세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임 원장의 말대로 노령화가 진행되면서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 이제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이냐가 더욱 중요해진다.
그는 “마음의 고향 인천을 위해 제 남은 삶은 노인들이 행복하고 편안하게 남은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며 “그래서 노인전문병원 원장을 맡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임 원장은 인천을 위해 큰 비전을 제시했다. “인천은 바다를 접하고 있어 지리적 여건이 훌륭하다”며 “이 점을 잘 활용하면 인천은 세계 일류도시, 명품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천을 동북아 의료허브, 세계의 의료허브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인천공항, 인천항 등 인프라와 주변 도서 등 관광자원을 잘 접목해 융합하면 세계적인 의료허브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며 “인천을 위해 마지막 여생을 바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임융의 원장(내과 전문의) 프로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졸업
-연세대학교 의과대학부속 세브란스병원(내과전문의 과정) 
-일본 국립 쿄토대학(임상 폐생리학 전공), 한국총동창회장
-서울의료원 내과과장 역임 
-혜성병원 창립 병원장 역임 
-대한의학협회 총무이사 역임 
-전국 중소병원연합회 회장 역임
-대한병원협회 학술위원회 위원장 역임
-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위원회 위원 역임
-국제로타리 제3650지구 총재 역임
 (현)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 외래교수
 (현)호스피스(암환자치료) 자원봉사자 교육위원회 위원장
 (현)해동노인전문병원 진료원장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