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람으로 살기 위한 주체적인 삶이란 가능한가?
화창한 아침, 이웃들에게 아침 인사를 밝게 건네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트루먼(Truman).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시작한다. 매일 듣는 라디오에서는 그의 기분에 맞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출근길에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밝고 활기찬 얼굴로 그를 대한다. 아내와 결혼하기 전, 그에게도 잊지 못할 첫사랑과의 추억이 있긴 하지만, 현실의 결혼 생활도 그럭저럭 살아갈 만도 하다. 그가 사는 시해이븐(Seahaven)은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상낙원으로 손꼽히는 등 그의 일상은 의심할 나위 없이 평범하고 무난했다. 때때로 무료하기까지 하면서. 하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은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뜬금없이 나타나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돼 오던 평범함은 하나의 균열을 시작으로 이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고 허점들이 드러나게 되면서 트루먼이 살던 지상낙원인 시해이븐은 L.A, 할리우드의 거대한 스튜디오임이 밝혀지게 된다. 사실 트루먼은 방송국에서 입양한 아이로, 출생, 첫 걸음마, 초등학교 입학, 첫사랑과의 키스, 결혼 등 그의 모든 24시간 30여 년의 날들은 1만909일째 방송 전파를 타며 전 세계 220여 개의 나라 17억 인구에게 생중계되고 있었다. TV로 방송되는 그의 삶은 그를 조종하는 빅브라더 같은 존재인 연출자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었다. 사랑도, 우정도, 가족도, 그의 미래도. 모두 인위적으로 조작된 끝이 정해져 있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1998년에 제작된 영화 트루먼 쇼는 시청률과 사생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리얼리티 TV쇼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담고 있는 영화다. 하지만 조금 더 찬찬히 그 속을 들여다보다 보면 이런 의문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도 허상이 아닐까?’ ‘거대한 매트릭스 프로그램 안에서 이미 내 삶에 대한 결론은 모두 결정돼 있는 것을 나만 모른 채, 마치 내가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트루먼(Truman)이다. Tru(e)+man 참된, 진실한, 진짜 사람이란 뜻으로도 이름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새장 속에 갇힌 사람이 진짜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러니와 함께 영화는 또 다른 아이러니를 생각하게 한다. 바로 그의 존재와 부재 그리고 시청자들의 존재와 부재다. 영화의 결론은 트루먼이 진짜 삶을 살아갈 것 같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 보인다. 자신을 가둔 프로그램 밖으로 나가면서 존재를 확인하는 트루먼.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그의 부재를 인식하게 된다. TV 속 그의 마지막 모습은 검은 옷을 입고 검은색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가면서 그 존재성이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트루먼 쇼’가 아닌, 다른 채널을 돌리며 그들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줄 또 다른 프로그램을 찾아 나선다. 어쩌면 TV 밖에는 TV를 보며 자신의 삶을 가두는 또 다른 매트릭스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즉, 트루먼의 존재는 TV 밖으로 나오면서 스스로에게는 의미를 갖지만, 사람들에겐 부재로 남게 되고, TV 밖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자신들은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존재로 의식할지는 모르나, 사실은 그 프로그램을 ‘보는 자’로 설정이 돼 있음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은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블랙홀 같은 매트릭스라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오늘도 내일도 모두 정해진 수순으로 반복되는 날들의 연속이지만, 알아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때고 살아야 할까? 정해진 운명이 있으니, 어제 같은 오늘을 수동적으로 살기만 하는 되는 것일까? 하지만 이런 허무주의를 깨는 단 한 장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활짝 웃으며 자신을 가둔 틀을 깨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는 희망에 찬 트루먼의 마지막 얼굴이다.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한 수동적인 태도가 우리 스스로를 매트릭스 안으로 더 깊게 밀어넣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오늘을 사는 것이 우리의 생각을 포박하는 매트릭스의 존재를 깨는 가장 큰 도구는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나의 하루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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