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편집광(The Collector)’은 벤허로 잘 알려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후기 작품으로 집착과 소유욕 그리고 사랑의 관계를 스릴러 형식을 빌려 날카롭게 표현해 내고 있다. 이 영화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지내던 은행원 프레디가 축구 복권에 당첨돼 엄청난 돈을 받게 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취미생활인 나비 수집을 하며 지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나비용 마취제를 이용해 평소 흠모하던 미란다라는 미대생을 납치, 감금하면서 전개된다.

자신이 왜 갇힌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미란다는 식음을 전폐하고, 이에 걱정이 되는 프레디는 미란다에게 거부할 수 없는 협상 카드를 내민다. 그가 제시한 협상은 주는 밥도 잘 먹고 자신과 이야기하면서 친구로 지내준다면 4주 뒤에 집으로 돌려보내 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4주째 되는 날. 프레디는 미란다에게 마지막 저녁은 그녀의 지하방이 아닌 자신의 저택에서 정찬을 들 것을 권하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 그는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라고. 단, 자기랑 같은 집에서 살아주기만 하면 된다고 그녀에게 억지스러운 청혼을 한다. 하지만 이를 거부한 미란다는 프레디와의 격렬한 몸싸움을 하게 되고, 싸우던 중 그녀는 그를 삽으로 내리치게 된다. 남자는 부상한 상황에서도 여자를 지하실에 다시 가두고, 자신은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그리고 3일 후 퇴원해 집에 온 프레디는 추위와 배고픔으로 싸늘한 주검이 된 여자를 발견하고 길지 않은 죄책감에 빠진다. ‘너무 오만방자한 여자였어. 이번엔 잘난 여자가 아닌 평범해서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며, 내가 뭔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여자로 골라야겠어!’라고 말하며 자신이 다쳤을 때 치료해준 간호사로 보이는 여자를 미행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지나치게 소심하고 자신만의 세계가 대단히 견고해 타인이 자신에게 가까이 갈 여지를 주지 않는 남자는 자기 자신이 아닌 세상을 탓한다. 아무도 자기와 대화하려 하지 않고, 진심으로 대해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는 어린 시절 버스에서 처음 본 예쁜 여자 미란다를 납치하기로 했던 것이다. 결말에 간호사를 납치할 것으로 결심하는 장면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미란다는 그 간호사처럼, 의미 없는 웃음일지언정, 그에게 따뜻한 미소 한 번 보내줬으리라. 그리고 그 웃음이 결국엔 그로 하여금 그녀를 자신의 곁에 두기로 결심한 시작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납치 후 프레디는 정성껏 요리를 하고, 옷을 사 주고, 방을 꾸며주는 자신의 모든 행동이 그녀를 위한 배려이고, 진심이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그는 진정으로 그녀를 알고 싶었다기보다는, 자신이 좋을 대로 해석하고 고정한 방식으로 그녀를 포박시키려 했을 뿐이었다. 마치 표본실에 곱게 진열된 수천 마리의 나비들처럼 말이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었다. ‘내가 사랑한 건, 사랑을 하는 내 모습이었다’는 그런 말. 사랑의 본질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 답은 쉽게 내려지지 않는다. 혹은 내 나름대로 도출한 대답들도 상황에 따라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다시 수정되기도 하고 부정되기도 한다. ‘너이기 때문에 너를 사랑한다’가 아닌, 단순히 ‘사랑한다’라는 듣기에는 좋은 말 즉, 너를 사랑한다는 본질은 없고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모호한 감정 속에서 어쩌면 너무도 많은 만남들이 소유욕과 육욕 그리고 나름의 이기심들로 점철된 거짓 감정으로 상대방을 포박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 만남이 끝났을 때 ‘그 사람은 처음부터 그렇게 내가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고 영화 속 프레디처럼 자신의 비겁한 감정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며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희생자를 계속 만들어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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