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20대 때에는 검은색 트렁크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면 새로운 삶이 기다릴 거라 생각하지만, 30대엔 안다. 어딜 가도 똑같다는 것을...’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1999년 ‘아메리칸 뷰티’로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그려낸 영국 출신의 샘 멘데스 감독의 2008년도 작품이다. 2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정말로 원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라고 말이다.
젊음과 열정, 그리고 사랑으로 만난 프랭크와 에이프릴. 이들은 세상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직업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간다. 8년에 가까운 결혼 생활과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긴 하지만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저 수긍하면서. 하지만 문득 에이프릴은 남편이 파리에서 군 생활을 하던 사진을 발견하곤 그곳에서 새 삶을 살자고 권유한다.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며 살아갈 게 아니라 파리에 가서 정말 원하는 일을 찾아보자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이들은 미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넉 달 뒤 파리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자 지루하기만 했던 이들의 일상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퇴직을 결심했던 업무에서 예상외의 성과를 올리는가 하면, 연애시절의 열정이 되살아난 부부는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뜻밖의 승진과 계획에 없었던 임신으로 인해 파리에 가고자 했던 이들 부부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컨베어벨트 위의 삶을 산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태어나, 학교에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누가 정해둔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볼 때가 있다. 하지만 그토록 치열하게 노력해 쟁취한 평범한 일상 속에 진정 우리가 원하는 삶이 존재할까? 우리는 모두 특별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남들과 다르지 않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저 보통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마치 고행의 길을 걷듯 평범한 일상을 힘겹게 걸어간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에이프릴은 파리에 가고 싶어 했지만 그건 꼭 파리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저 일상에서 탈출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았다. 하지만 남편 프랭크는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어느 정도 자신의 생활에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의 얼굴이 끊임없이 불안해 보이는 까닭은 아마도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찾을 수 있을 거란 믿음도, 그리고 미련 없이 현재에 충실할 수 있을 거란 용기도 없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 없이는 결국 어떤 것도 충족될 수 없으리라. 자신의 삶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면, 비록 그곳이 반복되는 일상 속일지라도, 그리고 꼭 새로운 곳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진심으로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프랭크와 에이프릴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평화로운 오후의 햇살 속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으면서 말이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치열하게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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