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물속의 칼(Knife in the water)’은 폴란드 출신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첫 장편 데뷔작이자 그의 영화 세계를 보여준 작품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이 영화는 단 세 명의 등장인물들로만 구성돼 있으며, 하루라는 시간 동안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바다와 그들이 탄 배, 그리고 세 사람. 이들 외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보고 난 후엔 마치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낱낱이 훑어 본 느낌을 받게 하는 힘을 가진 영화다.

영화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한 부부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아무런 말이 없이 차를 몰고 간다.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가던 부부는 히치하이크를 하는 청년을 길에서 만나게 된다. 고급 승용차를 몰고 요트 여행을 떠나는 등 세상의 주류에 속해 보이는 부부와는 대조적으로 보이는 검은 옷을 입은 부랑자 청년의 모습. 이렇듯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세 사람은 잠시 동안 동행을 하며 요트 정박장까지 오게 된다. 그리고 남편은 청년에게 잔심부름 등을 시키며 자신의 요트를 뽐내면서 청년에게 함께 요트 여행을 하겠느냐며 제안하게 되고, 청년은 들뜬 마음으로 그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그렇게 하루라는 시간 동안 함께 바다 위에서 휴가를 보내게 된 세 사람은 끝없이 펼쳐진 열린 공간인 동시에 배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폐쇄된 공간이기도 한 바다 위에서 인간이 가진 본성을 드러내게 된다.
폴란스키 감독은 이 영화에서 그의 주된 관심사인 폭력과 성(性), 그리고 계급 구조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남편은 자신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내보다 한 수 위의 계급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요트의 주인이자, 배의 방향키를 관장하는 선장의 위치를 확보함으로 청년보다는 단연 우위의 위치를 점유하게 된다. 그런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그는 청년을 노예처럼 부리려 하지만 청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계급 구조에서 같은 남성이지만 하위에 위치한 청년에게 위안이 되는 도구는 그가 항상 품고 다니는 호신용 칼이다. 배의 주인이자 선장인 남편은 늘 청년이 가지고 다니는 칼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낸다. 그리고 청년이 잠시 칼을 챙기지 않는 사이, 남편이 칼을 가로채게 되면서 아슬아슬 하게나마 유지돼 오던 이들의 팽팽한 무게 중심은 칼로 상징되는 무력까지도 독식하게 된 남편의 완전한 승리로 이동하게 된다.
결국 권력과 힘을 함께 가진 남편은 청년을 배 밖으로 내몰게 되고, 물에 빠진 청년은 실종된다. 그 광경을 본 아내는 남편에게 살인자라고 소리치며 청년을 찾아오라고 다그친다. 애써 불안감을 감추며 물속에 몸을 던져 청년을 찾아 나선 남편. 하지만 남편이 바다로 뛰어든 뒤, 실종을 가장한 청년이 배 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남편의 시선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서로를 향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게 된다.
이들이 보여주는 탐욕스러운 욕망은 끝이 없다. 돈을 가진 자는 부를 과시하고, 젊음을 가진 자는 그 생생함을 과시하고, 권력을 가진 자는 그 힘을 과시하려고 애쓴다. 전통적인 계급구조 아래 약자인 여성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내세워 과시한다. 이런 과시 욕망은 어쩌면 그것들을 제외하면 자신이 초라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너무나도 고요하고 잔잔해 보이는 수면 아래 날카롭고 위험한 칼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처럼, 우리들이 가진 탐욕스러운 욕망은 잘 드러나지 않을 뿐, 언제나 날카롭게 상대방을 찌를 준비가 돼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우리의 숨겨진 내면을 들켜 버린 듯 씁쓸함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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