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학자들은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기호로 이뤄져 있다고.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호는 분명 언어일 것이다. 비록 한국어, 일어, 영어, 중국어 등 각 나라마다 활용하고 있는 언어 기호의 형태는 다르지만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전달하고, 타인과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되고 있음은 어떤 언어를 막론하고 공통된 특징이리라. 하지만 우리가 쓰는 문자 언어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그 언어를 사용하고 활용하는 사람들이 단순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때로 우리는 전달되는 말 이면의 숨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며, 반어적으로 말을 할 때도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마치 암호를 해독하듯 그 말의 숨은 의미, 혹은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읽어내야 한다. 만약 그 해독 과정이 실패하거나 잘못 독해됐을 때 우리는 ‘오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영화 클로저(Closer)는 엇갈린 네 남녀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로, 우리에겐 1967년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졸업’으로 더욱 잘 알려진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2004년도 작품이다. 여기, 자신만은 사랑에 솔직했다고 믿는 네 사람이 있다. 항상 ‘진실’을 찾아 갈망하는 댄, ‘소유’를 사랑이라 믿고 싶은 래리, 우유부단함을 ‘배려’라고 생각하는 안나, 그리고 늘 자신을 ‘보호’하려는 앨리스가 있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상처받은 사람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상처받은 이들의 특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 상대방을 찌를 뾰족한 가시를 내 세워서라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늘 자신만 상처를 받을 뿐이라며, 상대방에게 드리운 자신의 가시가 마치 정당한 양 스스로를 위안한다.
영화는 문학과 달리 문자보다는 영상에 많은 비중을 싣고 진행된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시각매체인 영화에서도 주요하게 사용된다. 특히 이 영화 ‘클로저’에서는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와 표정, 상황 등이 이들이 말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해독을 필요로 한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이들은 가장 솔직해야 할 순간 거짓을 말하고, 가장 진실을 말하는 순간 상대방에게 또 다른 진실을 추궁 당한다. 사랑하는 순간 이별을 고하고, 이별을 통보받고서야 진정 너를 사랑한다고 애원한다.
우리가 보는 현상은 양면적이다. 비록 하나의 현상을 보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 말할 수는 있을지라도 전부를 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영화 속에 ‘사랑한다’고 서로에게 속삭이는 말들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모두 진실이다. 단, 그 말 앞에 생략된 단어가 있다면, ‘(지금은) 사랑해’일 것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너만을) 사랑해’라고 해독했다면 그것은 오류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싶은 ‘사랑해’는 언제나 오류를 범한 후자를 선택한다. 이 때문에 어찌 보면 결국 진실이란 어디에도 없는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이 하는 말의 숨은 뜻, 그 이면의 이면을 찾아 집착을 하면 할수록 진실은 더욱 찾기 어려운 미궁으로 빠져든다. 왜냐하면 그 진실은 진정 상대방의 마음속 진실이라기보다 자신이 임의대로 믿고 싶은 상대방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어디에도 없는 진실의 무게를 힘들어하며 후회하는 순간은, 이미 사랑은 과거의 이름이 돼 ‘널 참 사랑했었지’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흐르면 그런 기억들도 사라지리라. 마치 언제 만났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 지는 즈음에 가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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