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리딩에서 태어나 런던과 미국에서 연극 연출가로 먼저 경력을 쌓은 샘 멘더스 감독의 1999년 첫 장편 데뷔 영화 ‘아메리칸 뷰티’. 감독의 연극 이력 때문일까? 그는 공간을 잘 활용할 줄 알고 있으며, 배우의 감정선과 주위 여백까지도 영화 속 프레임에 훌륭히 연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하고 있다. 그런 그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 ‘아메리칸 뷰티’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영화는 미국의 한 중산층 가정의 삶에서 시작된다. 딱히 나쁜 건 없지만, 그렇다고 즐거울 것도 없는 한 가족의 삶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 무대로 시작된다. 회사일도, 부부생활도 그렇다고 아버지로서도 언제나 어수룩하고 답답하고 무능력해 보이며, 하다 못해 딸에게선 차라리 없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평가를 듣고 사는 남편이자 아버지 레스터, 그의 아내 캐롤린, 그리고 그의 딸 제인. 이 세 사람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살고 있지만 한 가족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각각 개인의 삶 역시 현재 권태롭기 이를 데 없다.

이런 이들의 앞에 즐거움이 되고 기쁨을 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10대의 사춘기 딸에게는 이웃에 사는 학교친구 리키가, 아내에게는 같은 부동산 업계에서 일을 하는 잘 나가는 사업가가, 그리고 레스터에게는 딸의 친구인 매력적인 치어리더 안젤라가 나타나면서 이들의 삶은 변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따분했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 시작한다. 비록 그 첫 단추가 제자리를 찾아 들어간 시작은 아니었을지언정, 너무 변함이 없어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던 이 가족의 삶에서 그 변화의 시작은 이들 셋 모두에게 반길 만한 일이었다. 비록 그 변화의 끝은 어긋난 시작에서 이미 예감할 수 있듯 제자리를 찾을 수 없었지만 이들은 몰랐다. 자신들이 권태로워하는 일상과 가족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말이다.

행복은 늘 가까운 데 있다고 했던가? 허나 그걸 알고 있는 사람도, 그리고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고 진정으로 느끼고 살아가기엔 우리는 때로 상실의 늪에 빠져 망각하고 있는 거 같다. 행복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현재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토록 원하고 소망하던 것이 막상 내 것이 되면서, 우리의 일상이 되면서, 그토록 가치가 있던 것도 그 의미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나 그것을 소망했는지도 서서히 망각하기 시작한다. 딸의 친구를 욕망했던 레스터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깨닫고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자신이 그 동안 행복했음에도 그걸 잊고 살았다는 걸 깨달으면서 그간의 행복했던 과거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내 캐롤린을 사랑했던 젊은 시절과 자신의 딸이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그에게 안겨줬던 무한한 기쁨들에 대해서.
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지만 인생에서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선 때론 커다란 대가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레스터에게서 그 대가는 다시는 가족과의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커다란 대가를 치워야 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행복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었으니 그 대가는 헛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어리석게도 우리는 항상 지나간 과거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가올 미래는 희망이란 이름으로 기억하고 기다리지만 현재에 대해선 아무런 느낌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 것도 같다. 어제에 있어서는 미래가 된 오늘과 내일에 있어서 과거로 기억될 그 현재, 바로 ‘지금’이라는 이름이 말이다. 늘 같은 발을 딛고 서 있는 행복이 일상이란 이름과 함께 있음으로 인해 행복 안에 있어도 정작 볼 수 없는 그 미련함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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