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벨기에의 작가주의 감독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는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핸드 헬드 화면과 절제된 음악의 사용으로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듯 건조한 느낌으로 영화적 판타지는 철저히 배제된 채 진행된다. 이 영화는 아이와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소니아와 부르노의 생후 9일밖에 안 된 갓난아기 지미에 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철없는 10대 부부가 아기를 낳음으로써 비로소 책임과 의무를 알아가는 어른으로 성장해야만 하는 그런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10대 후반인 소니아는 이제 아이가 생겼으니 언제까지나 동네 부랑자로 살 수 없다며 남편인 부르노에게 매달 1천 유로를 준다는 직장을 소개하려 하지만 그는 ‘일이라는 건 바보 같은 사람만이 하는 거다’라며 거절한다. 그에게 있어 세상은 소매치기나 하며 살아도 무관한, 어찌 보면 놀이터일 뿐 생활, 의무 등의 책임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몸만 훌쩍 자란 철없는 부르노는 아이를 팔아도 돈이 된다는 걸 알고 아직 자신의 아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 아들 지미를 매매 입양시킨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고 실신한 아내에게 ‘아이는 또 낳을 수도 있다’며 여전히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를 직시하지 못한다. 결국 부르노는 아내의 성화로 인해 다시 자신의 아이를 찾으려 하지만 아이를 찾기 위해선 자신이 아이를 팔 때 받았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을 알고 그는 다시 소매치기를 저지른다. 그리고 결국 부르노는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죄수복을 입은 부르노를 면회 온 소니아에게 그는 묻는다. 아들 지미는 잘 있느냐고 말이다. 그리고 아들은 잘 있다는 소니아의 말에 애처롭게 서로의 이마를 마주한 두 사람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다.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자라고, 성장하고, 늙고 결국엔 죽기 마련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흘러 우리의 몸이 성장한다고 해서 그에 비례하는 속도로 우리의 정신도 함께 자라는 것은 아니다. 때로 우리의 정신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육체적 성장과는 별도의 성장통이 수반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성장통으로 인해 우리는 더욱 단단하게 성인으로 거듭나아 간다. 철없는 10대 남녀가 원하지 않았던,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를 낳음으로써 부모가 돼 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아이에서 어른을 거쳐 부모로 성장해 가는 쓰디쓴 성장통을 겪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각에서만이 아닌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쓴맛이 있음으로 달고 행복한 맛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언제나 달콤하고 살살 녹는 맛을 보고 산다면 정작 그것이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잘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쓴맛은 단맛을 위해, 그리고 단맛은 쓴맛을 위해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둘을 맛보기 위해 필연적으로 지나갈 수밖에 없는 모든 다양한 맛들도 다 거쳐 본 다음에야 우리는 무엇이 진정 달고 쓴지 더 명확히 알 수 있으리라. 이처럼 우리도 삶의 다양한 부분들을 모두 맛보고 경험하면서 부딪히고 깨지고 아파하면서 조금씩 성장하며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뜨겁게 흐르는 눈물을 훔치는 우리는 오늘도 성장통을 겪으며 조금씩 어른이 돼 가는 과정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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