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이미 결정된 것일까? 아니면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 살면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꼭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하는 갈림길에 설 때면 마치 선택하지 않은 그 하나의 다른 길이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을 거라는 미련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기시감을 경험하는 때도 있다. 데자부라는 것을 느끼면서 언제가 했던 일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는 그 정체 모를 기분에 휩싸일 때도 있다. 마치 지금 내 삶은 이미 다 써진 책처럼 완결이 된 상태인데, 현재라고 생각되는 이 모든 일상들은 알고 보면 과거를 회상하는 내 기억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묘한 기분에 들기도 한다.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는 우리가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운명에 대한 느낌을 기발한 상상력과 탄탄한 스토리로 풀어낸 영화로 그 이름도 낯선, ‘스트레인저 댄 픽션’이다. 자, 그럼 소설보다 더 낯선 영화 속 주인공인 해롤드 크릭의 삶으로 들어가보자.

곱슬머리에 주근깨도 보이는 얼굴, 웃지 않으면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칫솔질을 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해롤드 크릭으로 30대 중반에 국세청 직원이다. 미혼이고, 친구도 거의 없다. 취미도 없고,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다. 그냥 기계적으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해롤드의 이 무미건조한 일상이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해설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소설을 읽듯이. 그리고 어느 수요일 저녁, 퇴근길에 선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는 그 해설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혼란에 빠진다. 해롤드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는 대신 문학 교수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해설하고 있는 작가의 존재를 밝혀내고 노력하고, 마침내 한 여성 작가를 찾아내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소설이 어떻게 끝나는지, 다시 말하면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에 대해서 미리 읽어보게 된다.
그가 읽은 소설은 이렇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들은 바로 그 퇴근길의 수요일 저녁, 그의 운명을 뒤바꿔 놓을 작은 단초가 성립되게 된다. 평소에 잘 가던 시계가 갑자기 멈춰버리자 해롤드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시간을 물어봐서 다시 시계를 맞추지만 그 시간은 원래보다 3분 빠른 시간이었다. 이 3분이라는 어찌 보면 의미 없는 시간, 하지만 그 3분은 결국 거대한 그물이 돼 미래의 그의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 그것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의 시간으로 그를 내몰아 버린다.

때로 우리는 하루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그리고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루할 때가 있다.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내일 같은 그런 반복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느끼면 일상에 대한 권태와 무료함에 삶에 대한 열정이 식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구태의연하게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도, 그리고 의미 없어 보이는 순간순간의 선택들과 행동들도 결국 커다란 운명의 그물망을 형성해 우리가 반드시 오늘을 숨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필연을 만들기 위함이라면 어떨까? 의미 없이 느껴지는 작은 일상들은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훨씬 크고 고결하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원인으로 존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우연해 보이는 일상들이 모여 어찌 보면 오늘을 숨쉬고 있는 지금의 우리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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