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다. 하느님이 물었다. “너는 누구냐?” 그러자 여인은 당당하게 말했다. “저는 시장의 아내입니다.” 그러자 하느님이 다시 물었다. “네 남편을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여자는 다시 망설임 없이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둘 다 공부를 잘해 일류 대학에 들어갔지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는 질문은 “네 아이들에 대해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라고 똑같이 돌아온 질문에 여자는 자신이 사회에서 맡고 있는 직책들에 대해 나열했지만 계속 같은 질문만이 되돌아왔다. ‘너는 누구냐’라는…. 그러자 결국 여자는 ‘내가 누군지 누가 말해 줄 사람 없느냐’며 소리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인 ‘디파티드’로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화다.

‘디파티드’는 죽지 않고 영원한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지옥인 ‘무간지옥’에서 제목을 따온 2002년 히트작품인 홍콩 느와르 영화 ‘무간도’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범죄 드라마다. 주인공으로 두 경찰이 있다. 빌리와 콜린. 빌리는 비밀 경찰로 신분을 숨기고 갱단의 조직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콜린은 경찰이지만 갱단의 첩자로 경찰의 비밀 정보를 누설한다. 그렇게 상반된 두 개의 신분을 갖고 살아가는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갱단의 조직원으로 일하는 경찰 빌리는 경찰 내부의 첩자를 잡으려 하고, 경찰이자 갱단의 첩자인 콜린은 갱단 내 숨어 있는 비밀 경찰을 찾으려 한다. 언제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살아가던 두 사람은 서서히 서로의 정체를 알아가며 각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게 된다.

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 그리고 유명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상업영화로서의 매력을 한껏 발휘한 작품이지만, 클라이맥스에 가서는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는 영화로 남지 않고 철학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경찰이지만 그 신분은 비공개돼 있어 죽을 경우 경찰이 아닌 단순 깡패 조직원으로 죽어야 하는 빌리와 경찰 내부의 첩자이지만 표면상으로는 경찰이기도 한 콜린은 자신의 신분이 탄로나지 않는 한 우수한 경찰로 살아갈 수 있다는 그 아이러니가 영화 속에서 충돌한다.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자신의 존재함을 증명할 수 있을까? 태어났다는 출생증명서로 살아있음을 확인받고, 사망신고서로 죽었음을 확정할 수 있을까? 자신을 둘러싼 그 많은 직책들, 누군가의 딸, 아내, 어머니, 직장 내 위치 등으로 과연 스스로를 명확하게 규정지을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는 ‘너만이 너다’라는 말을 했다. 나만이 분명 나일 것이다. 하지만 나만이 진정으로 나일 수 있음을, ‘나는 누구인가?’라는 그 본질적인 질문에 아직은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 없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지금을 숨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대답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