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울 것 없는 관계를 맺는 건 타성 때문만은 아니다. 새로운 경험에 앞서는 두려움과 수줍음 때문. 모

   
 
든 것을 감수할 준비가 된 자만이 살아있는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이는 릴케가 쓴 시의 한 구절로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에서 인용되는 시다. 이 작품은 지난 2001년 개봉한 영화로 여성 간의 동성애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레즈비언이나 혹은 여성만의 자아찾기 영화는 아니다. 앞서 언급한 시와 같이 이 작품은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인간관계, 특히 ‘살아있는 관계’ 맺기와 ‘행복’에 관한 영화라고 함이 더 적절할 듯싶다.
영화 속 주인공 제시카는 뉴욕 트리뷴지의 기자로 일하는 당당하고 능력있는 커리어우먼이다. 단 한 가지 그녀의 결점 아닌 결점은 바로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변변한 남자친구 하나 없다는 것이다. 매력적인 제시카는 여러 남성들을 만나서 미팅을 해 보기도 하지만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큐레이터 여성인 헬렌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묘한 감정에 빠져든다. 적극적인 헬렌 덕분에(?) 소위 말하는 동성애를 시작하게 된 제시카.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동성애라는 허울을 벗고 바라본다면 일반적인 사랑과 관계 맺기에 더 가깝다. 특히나 틀 안에 갇혀 살던 제시카는 자신의 행복의 기준을 타인의 눈을 통해 규정하려던 사람이었고, 자신의 욕망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영향을 받던 사람이었다. 길거리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본 제시카는, 그들 스스로는 행복할지 몰라도 저런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비록 행복한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자신은 기사를 쓰고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을 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과연 행복이란 그런 것일까?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혹은 자신의 욕망을 넘어선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일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일까? 가치, 풍요로움, 명성, 존경 이런 것을 얻는 것은 분명 행복한 기분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에 우선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음이 아닐까 싶다. 치열하게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은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과 타성에 젖은 닫힌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한 일이 아닌, 사회 통념상 혹은 일반적인 생각이 그렇다고 해서 그 기준들이 프리 사이즈의 기성복 옷처럼 모두에게 다 잘 맞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제시카는 자신을 가두던 것들로부터 작은 해방을 찾은 모습으로 마무리됐다. 자신의 몸을 죄고 있던 틀을 하나씩 걷어낸 그녀의 얼굴은 전에 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새로움을 얻지 못하고 늘 같은 혹은 비슷한 삶을 산다는 건 익숙한 것에 대한 안주함, 혹은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으로 손을 뻗지 못한 내 자신의 원죄가 더 큰 것은 아닐까? 내가 검은 방에 들어가 있다고 지금이 밤이 아니듯, 그 문을 열고 나서면 어둠을 넘어 새로운 세상이 나를 맞이할 것이다. 비록 그 문 밖이 어떤 곳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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