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무리 초가을 같은 요즘 날씨라지만 여름은 여름인지라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계절이다.

매일 속옷을 갈아입다 보니 속옷이 얼마 남아 있지 않기 일쑤지만 생물학적 성별이 ‘남성’인 사람들에게 속옷가게는 쉽게 들어가기 힘들다.

친구들과 지하상가를 지나가다 속옷가게라도 지나치면 분명 어느 한 명은 “너 지금 저 마네킹 브래지어 훔쳐봤지?”라고 놀린 기억부터 여자친구에게 선물로 속옷 사준답시고 정작 가게에서는 뻘뻘 땀 흘리며 점원에게 손짓, 발짓으로 설명하던 기억까지.
“에이, 요즘은 그러지도 않아요. 다들 당차서 전처럼 쭈뼛대는 사람들도 별로 없어요. 원하는 디자인까지 말하면서 이것저것 둘러봐요. 아, 정말이라니깐. 내가 이 장사만 몇 년째인데.”
부평역지하상가에서 모 속옷 브랜드와 이름이 비슷한 ‘두방울’ 속옷가게를 운영하는 이남주(53)사장은 요즘도 그러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설마…’란 생각에 재차 물어보니 부평역지하상가가 생긴 1986년부터 23년째 장사했다며 믿으란다.

23년간 장사하다 보니 라이벌도 많았을 터.
“두어 번 정도 맞은편에 속옷가게가 생겨 자리경쟁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는 밤잠도 못 잘 정도로 신경쓰였죠. 더 좋은 물건만이 살 길이란 생각에 10시에 문 닫으면 바로 동대문으로 가 물건 고르고 집에 와 새벽 늦게나 잠이 들었죠.”
서울에서 가족이 내려와 속옷을 파는 일이 쉬워 보여 시작해 그때 처녀였던 단골손님의 딸이 브래지어를 사는 시절이 됐지만, 재래시장도 아니고 젊은 20대 여성들이 주 고객이라 그만큼 흘러가는 유행에 대처하는 일이 쉽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도 23년을 장사하다 보니 감이라는 게 생겨서 아무리 예쁜 상품도 왠지 안 끌리면 그 상품은 잘 안 팔리고, 좀 무난하다 싶은 것도 감이 오는 상품들은 잘 팔리더라고요.”
요즘에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묶어서 파는 속옷들이 많아 매출 걱정이 많다는 이 사장은 장사하면서 생긴 내공 때문인지 올 초에는 모 방송사의 팔씨름 경연대회에 우연히 나갔다가 우승하기도 했다.

20년 넘게 장사하면서 사람들 체형도 예전과 달라져 남자는 100을 기준으로 요즘은 95가 많이 나가고, 여자는 80을 기준으로 75를 찾는 비율이 85보다 많이 늘었으며, 요즘에는 B컵을 더 많이 찾아 가슴둘레는 줄고 크기는 커진 것 같단다.

“예전보다 잘 먹어서 그런지, 가슴성형을 많이 해서 그런지 가슴은 전보다 커졌어요. 장사를 하다보니 보기만 해도 속옷 치수를 딱 아는데 얼마 전에는 뚱뚱한 사람이 자꾸 75를 고르길래 말렸는데도 말을 듣지 않더라고요. 속옷은 맞는 걸 입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한창 장사가 잘 될 때는 추가로 가게도 내봤지만 관리하는 데 너무 힘들어 그만뒀다는 이 사장은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보다는 앞으로도 미움 안 받고 열심히 장사하는 게 소원이라면 소원”이라는 말을 끝으로 손님을 맞아야 된다며 자리를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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