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절모에 커다란 신발, 조그만 콧수염과 뒤뚱뒤뚱 걷는 걸음걸이.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들이다. 배우이자 천재 감독으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그 이름 찰리 채플린. 오늘은 그의 영화 ‘모던 타임즈’를 다시 보며 산업화 사회로 막 접어들었던 1930년대 미국의 그때 그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나볼까 한다. 영화가 개봉될 당시와 지금은 무려 70년의 간극이 존재하지만 그 시절의 현대사회와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은 과연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를까?

채플린은 전기 철강 공장에서 나사 조이는 일을 하는 노동자다. 그의 작업장은 최신 설비를 갖춘 곳으로, 1920년대 미국 경제성장의 큰 공헌을 한 포드 자동차사의 컨베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한 현대적인 공장이다. 이 시스템이 개발되기 전 자동차 한 대가 만들어지기 위해는 숙련공들이 정교하게 조립을 해 한 달에 한 대를 만들어 고가에 자동차가 팔렸다면, 이 시스템은 작업 환경의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일련의 벨트 흐름을 통해 비숙련공들도 약간의 기술만 익히게 되면 예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제품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도시에는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일거리를 찾아 몰려들었고, 기업들은 생산활동을 활발히 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경제적 발전이라는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인간이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기계부품처럼 취급되는 부정적인 측면도 드러내게 됐다.

영화 속 채플린은 마치 기계처럼 단순히 나사 조이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할 뿐,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의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히 체크하며 관리라는 명분으로 통제하려 들었다. 더 높은 효율성 창출이라는 모토 아래 밥먹을 시간 동안에도 끊임없이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밥 먹여 주는 기계’의 효과를 실험하게 된 채플린은 기계의 오작동으로 정신착란을 일으키게 된다. 그렇게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그를 회사는 매몰차게 해고해 버린다. 영화는 당시 세태를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긴 하지만 영화의 엔딩은 디스토피아 적이고 어두운 결말이 아닌, 거리에서 만난 소녀와 함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밝은 걸음으로 따뜻한 미소를 얼굴에 머금은 모습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요즘 뉴스나 신문을 보면 최근 우리 경제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과 경기 회복에 대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70여 년 전 채플린이 본 부조리한 산업사회의 모습도 여전히 우리 곁에 있음 또한 부정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여전히 높은 실업률과 빈곤층, 그리고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작업환경들과 법으로도 구제받을 수 없는 음지에 있는 노동자들에겐 영화 ‘모던 타임즈’의 세상은 어쩌면 절대로 끝나지 않을 네버 엔딩 스토리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 위안을 받는 것은 영화 속 채플린의 마지막 시선처럼 따뜻한 미소와 힘차고 밝은 걸음으로 내일을 준비한다면 머지않아 희망의 빛이 우리 모두에게 비칠 거라는 믿음을 가져보며 오늘을 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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