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떤 일이든 마음에서 다 잊을 수가 없고 계속 그것이 마음에 걸리면 어쩔 수 없다. 소위 `좌망'(坐忘)이라 해서 만사를 잊고 마음 속 활연하게 하나에 머무르지 않는 경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만사만경에서 종횡무진, 자유자제한 판단이 가능하다.” 일본 에도시대 말기의 지혜로운 학자 가쓰 가이슈의 말이다. 가쓰 가이슈의 좌망은 장자의 `무심의 경지'와 같은 의미다. 무심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어떤 사태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판단력이 몸에 배인다는 것이다. 어느 때 제자 안희가 공자에게 물었다. “언젠가 깊은 강을 건넌 적이 있었는데 뱃사공의 배 다루는 기술이 마치 신의 기량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그 정도의 기술은 누구라도 익힐 수 있는 것입니까?'고요. 그러자 그는 `그렇지 않습니다. 수영에 능한 자라면 곧 할 수 있습니다. 잠수의 명인이라면 배를 본 적이 없더라도 금세 다룰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유를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이는 어떤 이유입니까?” 공자는 이 물음에 “수영에 능한 자라면 곧 할 수 있다는 것은 물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잠수의 명인이라면 금새 다룰 수 있다는 것은 강물도 뭍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눈앞에 어떤 사태가 일어나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다. 항상 태연자약하게 대처할 수 있지. 노름을 예로 들면 기왓장처럼 별 가치가 없는 걸 걸었을 때는 잘 되지만 장신구같은 소소한 금붙이를 걸었을 때는 평정함을 잃게 되고 황금처럼 비싼 것을 걸면 마음이 완전히 동요된다. 솜씨에 변함은 없지만 아깝다는 마음이 커짐에 따라 마음도 더욱 격하게 흔들리는 법이거늘.” 그렇다. 의식을 텅 비어놓은 상태.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면 어떤 고정관념에도 좌우되지 않고 흘러가는 정세에 허심탄회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신과 폭로가 판을 치는 우리 정치권은 어떤가. 총리 인준이 연거푸 물건너 간 것은 애시당초 임명에서부터 실수를 범한 무심부재의 발로가 아닐지.

그래서 백성은 세번째 총리인준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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