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연합뉴스)제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일본의 히로시마(廣島)에서 반전.평화를 염원하는 공연 및 전시회 '간조전(感情展)'이 23일 개막됐다.

한국과 일본의 예술가 60여명이 참여한 이 행사는 26일까지 '평화, 전쟁, 인간'을 주제로 피폭 건물인 옛 일본은행 히로시마 지점과 평화공원내 한국위령비 등에서춤, 음악, 미술,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과 전시 행사로 진행된다.

이날 오후 4시 옛 일본은행 건물의 앞뒤 공간, 중앙정원, 화장실, 금고, 통로등에서 동시 진행된 개막공연은 전후 젊은 세대들의 평화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 생동감 있는 몸짓으로 보여줬다.

현대무용가 한선미(30)씨는 흰색 천과 한지, 장미와 파란색 물감 등 소품을 이용한 퍼포먼스를 통해 은행건물 지하의 음습한 화장실을 사랑이 피어나는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한씨는 "물감을 칠하고 그것을 세면대에서 물로 씻어내는 일련의 춤동작을 통해 사랑은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것일 뿐 아니라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무용가 김수현(42)씨는 전통 무속을 현대화한 춤사위로 인류가 저지른 피의 역사를 정화하고자 했다.

지하금고 앞 통로에서 진행된 김씨의 춤공연은 피의 역사로 인한 응어리가 고통스러운 냉전의 터널로 이어지다가 관객들과 하나가 되는 화합과 용서의 마당으로 바뀌는 과정을 연출했다.

김씨는 24일 오후 평화공원내 한국위령비 앞에서 경기도살풀이를 기본으로 하는 즉흥 창작무용을 통해 원폭으로 한순간에 재로 변했던 영혼들을 위로하는 씻김굿을 펼칠 예정이다.

댄스컴퍼니 아재(이재연 등 3명)는 '바나나 보이'라는 제목의 무용작품으로 개인과 국가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비극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줬고, 이진영(30)씨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순수성이 사라지는 모습을 재즈댄스로 연출했다.

전쟁 후유증이 깃들어 있는 춤장르로 절제되고 함축된 동작을 보여주는 부토(舞踏) 공연을 비롯해 연주공연단 모노크롬서커스, 타악연주자 사사키 마사히로(佐伯雅啓) 등 음악과 춤을 결합한 일본 참가자들의 공연도 잇따라 펼쳐졌다.

춤공연과 함께 3층짜리 은행건물의 여러 공간에서는 사진작가 나가시마 요시아키(長島義明.61)씨의 세계 각국의 어린이 사진, 아사히(朝日) 신문사에 재직중인 도쿠야마 요시오(德山善雄.45)씨의 동구권 및 옛 소련의 와해 과정을 담은 취재사진에 시인 오가와 히데하루(小川英晴.52씨)의 시작품을 결합한 포토포엠 전시회 등이 열리고 있다.

이희상(45)씨와 사가구치 스미오(坂口澄夫.61)씨 등 한.일 사진작가들의 인물과 풍경사진, 화가 강창열(54)씨의 초현실주의적 그림, 심우진(27), 아키타 가즈시게(秋田一成.29), 한.일 작가 외에 유일하게 참여한 벨기에 출신 시릴 비하인(29)씨 등 일러스트 작가들의 일상을 주제로 한 그림, 다규멘터리 작가 신상기(33)씨의 영상물 '동포의 빛과 그림자' 등도 행사기간에 계속 전시된다.

오사카(大阪)에 거주하면서 이 공연을 기획.연출한 강명진(29)씨는 "공연장소인 옛 일본은행 히로시마 지점은 원폭투하지점에서 불과 380미터 떨어져 있지만 1936년 건축 당시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역사적 건물"이라며 "전쟁과 피폭의 경험이 없는 젊은 세대들을 이 공간에 끌어들여 평화의 의미를 돌아보자는 취지로 행사를 추진했다"고 말했다.

전시부문을 기획한 강미현(28)씨는 "신상기씨의 영상물 '동포의 빛과 그림자'는 한국인도 베트남전에서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면서 "이번 전시회는 전쟁의 반대의미로서 평화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개인들이 느끼는 평화의 의미를 돌아볼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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