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갑영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D군!
텅 빈 강의실을 바라보면서 이 글을 씁니다. 책상 이곳저곳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떠오르지만 유독 기억나는 사람은 바로 D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강의가 끝나자 내게 다가와 “교수님, 저도 좌파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웃으면서 “열심히 공부해!”라고 짧게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부둥켜안고 등이라도 토닥이며 격려하고 싶었지만 못했습니다. 오히려 좌파의 길이 얼마나 힘든데 그 길로 접어들려고 하느냐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좌빨’이니 ‘북빨’이니 하면서 시도때도 없이 걷어차는 현실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D가 생각나는 것은 그 표정이 너무 엄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대학은 ‘쓸데없는 것’ 배울 마지막 기회

취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좌파사투리’ 때문에 알아듣기도 어려운 강의를 진지하게 들어준 것만도 고마운데, 강의를 통해 누군가가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오면 힘이 절로 솟아납니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삶을 새롭게 설계하고, 사회를 통해 희망을 키워가는 학생들을 보면 언제까지나 강의실을 지키고 싶습니다. 사실 교양과목을 강의하는 것은 전공과목보다 쉬워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이다 보면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 쉽지 않고, 서로 소통이 잘 안 되면 이내 신명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양강좌는 정규직 교수들에게 인기가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D군!
그런데 대학을 다니면서 배워야 할 지식들은 너무 많고 좋은 일자리를 얻으려면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많지만, 역설적으로 대학을 다닐 때만이라도 세상에 대해, 사회에 대해, 근본적으로 바라보고 비판적으로 이해하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을 떠나 현실의 바다에 뛰어들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일하기 위해 세상에 나온 것처럼 혼신을 다해 경쟁에서 이겨야만 다음 날도 출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은 ‘쓸데없는 것들’을 배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오히려 쓸데 있는 것들은 대학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사회가 가르치고 기업이 가르치고 언론이 가르칩니다.

쓸데없는 것을 많이 배워 내공을 키워야 험악한(?) 현실을 헤쳐갈 수 있습니다. 세상을 근본에서 바라볼 수 있는 내공을 키우지 않으면, 권력에게 속거나 언론에게 속기 안성맞춤입니다. 더구나 내공이 약해 유행에라도 휘둘리게 되면 스스로의 삶이 어느 거리를 헤매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는 데는 면벽수행을 하거나 새벽기도도 좋은 방편이지만 ‘과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참모습이라면 눈만 크게 뜨고 다니면 되지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을지 모릅니다. 마르크스도 “일체의 현상이 본질과 일치한다면 과학은 필요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참다운 세계관을 만날 수 있는 강의실

D군!
그런데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고 현실을 옳게 밝혀주는 과학을 배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강의실에서도 말했듯이 어느 사회든지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그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이론이나 생각이 하나의 상식처럼 널리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들의 이론과 생각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말하기 때문에 정말 그럴듯하게 보입니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 활동하고 사회에는 빈부격차가 있고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느껴지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엉터리 상식들을 넘어 참다운 세계관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강의실에서 만난 ‘과학’은 그 시작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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