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혜욱(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2009년 한 해 한국여성의전화가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언론에 보도된 여성 살인사건은 총 82건인데 그 중 70건이 남편이나 애인에게서 죽임을 당한 경우였다. 2010년 상반기에도 벌써 44명의 여성이 남편과 애인에 의해 살해되었다. 2007년 법무부의 통계에 의하면 가정폭력 발생률은 50.4%로 2가구 중 1가구에서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심각성을 보여 주었다. 한국 사회에서 가정폭력의 발생빈도는 여전히 매우 높으며, 그 피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가정폭력의 유형에는 부부간의 폭력유형뿐 아니라 아동학대, 노인학대, 장애인학대 등의 유형을 포함하고 있으나, 가장 발생빈도가 높은 유형은 아내에 대한 폭력이다. 2007년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지속기간의 평균이 약 11년 2개월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정폭력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혼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행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폭력의 정도도 고막이 터지거나 이가 부러짐, 팔이나 다리가 부러짐, 유산 등 수술이 필요한 정도의 중한 폭력이 약 4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가정폭력 발생률이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상당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남편에게서 폭력을 당한 아내가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0.8%, 경찰 신고율은 2.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대부분의 이유는 도움을 요청하여도 도움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경우 극단적으로 가해자를 살해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2004년 법무부의 연구보고에 따르면 청주여자교도소의 전체 수형자 531명 가운데 57.1%인 249명이 살인에 의해 수감되었고, 전체 살인자 중 남편을 살해한 사람들의 비율은 51.4%였다. 이들 중 80%가 남편의 지속적이고 잔인한 폭력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순식간에 가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1일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가정폭력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사기관의 가정폭력에 대한 초기 대응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2007년 여성의전화가 시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경찰에 신고한 경우 “집안일이니 잘 해결하라”며 돌아가거나 즉시 출동하지 않는 등 부정적으로 대처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경찰의 이와 같은 대응은 가정폭력 신고 후 남편이 더 폭력적으로 되는 계기가 된다. 가정폭력사건에 대한 처리는 수사과정에서 뿐 아니라 처벌과정에서도 미흡한 측면이 지적되고 있다. 반복적이거나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는 중한 폭력임에도 불구하고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처분이 부과되고 있다.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처분이라고 하나 일반 폭력사건과 비교하였을 때 현저히 불균형한 처벌이다. 보호관찰, 상담명령 등 보호처분이 부과되는 경우에도 가정폭력의 재발 방지를 위해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집행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를 통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가정폭력사건이 발생해서 종국처분인 보호처분을 받을 때까지 대략 3~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리고 있다.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서 거주하는 가정폭력의 특성을 고려할 때 피해자가 장기간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정폭력사건의 경우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는 사법기관의 범죄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사건의 신속한 처리가 요청된다.

최근 우리 사회는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처벌의 강화와 피해자 보호가 범죄정책의 전부인 것처럼 입법이 진행되고 있다. 소위 ‘화학적 거세’를 허용하는 법률까지 제정되었다. 물론 성폭력 범죄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여전히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가정폭력은 ‘대물림’될 수 있는 폭력이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처우와 피해자 보호가 중요하다. 폭력가정의 자녀가 가출하여 비행청소년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할 비율이 높다는 것과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폭력의 후유증이 크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청소년들이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가정에서의 폭력은 근절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정폭력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대응은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가정폭력에 대한 수사기관을 비롯한 일반 국민들의 의식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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