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갑영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D군!
혹시 D군도 ‘장관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못해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행여나 그러지 마십시오. 오죽했으면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마는 자식이 그런 마음을 갖는 순간 부모님께서는 자식을 보면서 ‘장관이 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억울한 자식과 미안한 부모들’로 사회가 넘쳐난다면 이거야 제대로 된 세상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더구나 공정한 사회를 기치로 내걸었던 정부는 채 여음이 가시기도 전에 흙탕물을 뒤집어쓰게 되었습니다. 하기는 역사에서 배운 것처럼 고려 광종 때 과거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도 귀족의 자식들은 특혜인 음서제도(蔭敍制度)를 누렸으니 새삼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고관대작인 지배세력이 어떻게든 지켜보려고 하는 것은 음서제도뿐만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라는 사회입니다. 그분들이 보기에 자본주의는 사람의 본성에 어울리는 조화로운 사회이기 때문에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논리는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머리에 넣어주기 때문에 다른 사회를 상상하거나 가슴에 품는 것은 왠지 죄를 짓는다는 느낌까지 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회가 시장과 경쟁을 바탕으로 움직이게 된 것은 바로 사람의 본성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말고 다른 사회는 절대 만들 수 없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D군!
정말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일까요? 그래서 자본주의는 사람에게 딱 맞는 사회이고, 당연히 영원한 사회일까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읽어 보았겠지만, 『이기적인 유전자』와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는 사람이 이기적인 존재인가 아닌가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선뜻 판단이 서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생각되다가도, 간혹 목숨을 던져 타인을 구하는 사람을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하기는 사람은 이기적이라고 배운 덕분에 새우 간도 빼 먹으려는 스스로의 탐욕조차 본능이라고 위로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늘 아래 낡은 것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변하지 않는 본성이라는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기는 본성이 어쩌고저쩌고 할 때는 사람이 먹고, 자고, 입고하는 것을 본성이라고 따지기보다는, 사람은 타고나기를 자기 이익만 알고 욕심이 덕지덕지하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고 도우면서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경고를 보내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은 결코 이기심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에 이기심에 바탕으로 두고 만들어진 자본주의는 사람의 본능에 부응하는 사회이고 변할 수 없는 질서이기 때문에 다른 사회를 꿈꾸는 것은 본성에 반하는 무지한 짓거리라는 엄중한 설교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이란 ‘사회관계의 총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회가 바뀌면 사람도 변하고, 사회를 바꾸는 과정에서 사람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기적으로 살고 점점 더 탐욕스러워지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 사회가 강요하기 때문이란 뜻입니다.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사회를 이야기하면 어쩐지 상식에 어긋나고 정신이상자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이기적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순간 새로운 사회는 시작됩니다. 다만 새로운 사회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에 맞서고 싸워나가는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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