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인천문화예술회관은 뜨거운 박수가 그칠 줄 몰랐다. 합창단의 하나된 목소리에 관객들의 숨소리와 박수소리까지 더해졌다. 백발 거장 윤학원 감독은 관객을 향해 겸손한 듯 조용히 인사했다. 어디 특별하지 않은 무대가 있으랴만, 윤 감독에게 이번 무대는 더욱 특별하다. 이달 말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열리는 ‘제4회 합창 박람회’ 공연을 앞두고 최종 점검을 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인천시립합창단이었지만 지난 1995년 윤 감독이 합창단을 맡으면서 시립합창단은 한국은 물론, 세계정상의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윤 감독을 두고 ‘합창계의 거장’이나 ‘한국 합창음악의 선구자’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지만 정작 윤 감독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한다.
본보는 프랑스 합창 박람회를 앞두고 음악의 거장 윤 감독을 만나 이번 대회의 성격과 프로그램, 앞으로의 바람 등을 들어봤다. 

다음은 윤 감독과 일문일답.
   
 

-프랑스 노르망디 합창박람회는 어떤 대회인지.
▶노르망디 합창 박람회는 세계 공연 기획자와 음악 프로모터에게 합창 음악을 홍보하는 자리이다. 올해로 4회째인 박람회에는 12개 합창단이 초청받았고 23개국에서 온 합창음악 관련자를 비롯해 청중 등 1만여 명이 참여한다. 한마디로 ‘합창 축제’이다.

-프랑스에서 보여 줄 프로그램은 어떻게 되는지.
▶정기연주회를 통해 인천시민들에게 보여준 프로그램과 동일하다. Part1에서는 Misericordias Domini(자비하신 주님), Sanctus(거룩) 등 창작곡과 Sa ku ra, Sik Sik Si Batu Manikkam 등 아시아민요를 연주한다.
Part2에서 메나리와 8소성 등 창작곡과 농부가, 옹헤야(보리타작) 등 한국 곡을 부른다. 박람회 측에서 아시아·한국곡을 함께 연주해 줄 것을 요구했다. 때문에 한국민요 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인도, 몽골 등 아시아 전통 민요를 두루 연주할 계획이다. 그러나 가장 중점을 둔 건 한국적인 멋이 묻어 날수 있도록 준비했다.”
-매 공연마다 관중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대단하다. 비결이 있나.
▶연주를 할 때 세 가지 원칙을 두고 있다. 한국적이고 현대적이면서도 세계화될 수 있는 음악이어야 한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아름답고 세계에 우리를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아이템이다. 하지만 한국적인 음악이 ‘한국’이라는 틀에만 갇혀있으면 세계화가 될 수 없다. 현대적인 트렌드에도 뒤처지지 않는 한국 음악을 만들어야 하다. 만약 우리가 독일의 ‘바흐’ 음악을 아무리 잘 연주한다고 해도 독일 사람보다 잘 표현하겠는가? 또 독일 사람이 우리 판소리를 부른다고 한들 우리보다 잘 할 수는 없다. 즉, 우리만의 정체성과 독자성이 있어야 세계화가 될 수 있다.”
-인천시립합창단은 전임 작곡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15년 전 인천시립합창단으로 오면서 전임 작곡가를 요구했다. 다시 독일의 예를 보자. 우리가 ‘바흐’ 음악을 들고 독일에 가서 아무리 멋 떨어지게 연주를 해도 우리만의 색깔을 표현해내기란 쉽지 않다. 우리만의 음악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임 작곡가가 시급했다. 전임 작곡자와 함께 작업하면서 기존에 불리던 곡이나 외국곡에 의존했던 합창단이 서서히 색깔을 찾기 시작했다. 다채롭고 새로운 곡의 연주는 물론, 공연이가 거듭될수록 합창단에 맞게 곡을 수정함으로써 더욱 세련되고 완성미 높은 곡을 보여 줄 수 있게 된 거다. 지난번 미국공연도 그렇고 이번 프랑스공연도 모두 인천출신 작곡가들이 만든 곡들로 구성했다.”
-퍼포먼스가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합창의 움직임은 시대의 흐름인가.
▶합창단에서 움직임 즉 퍼포먼스는 말 그대로 ‘대세’다. 지금은 내용보다 비주얼적인 것이 중요시되는 세상이다. 당장이라도 텔레비전을 틀면 노래하고 춤추는 게 매일 쏟아져 나온다. 처음 합창단원을 움직이게 된 계기가 바로 텔레비전이다. 그러고 보면 움직이는 합창단은 시대적 흐름인 것 같다. 최근 세계적인 합창대회를 보면 대부분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포크송의 경우 100% 움직임이 있다.”
-KBS 남자의 자격의 합창단을 통해 본 합창은 무엇인가.
▶방송을 보면서 눈물이 고였다. 정말 대단하다. 마음과 마음이 합해 ‘하나’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합창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일이다. 자기만 잘해서는 안 된다. 만약 단원들이 독창자를 미워하거나 질투한다면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없다. 완벽한 연주를 위해서 독창자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돋보이게 만들어 주기 위해 화음을 잘 만들어 줘야 한다. 독창자 역시 멜로디 파트를 했을 때에는 단원들의 화음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 비로소 ‘합창’이 완성되는 거다.”
-우리나라 합창의 현실과 앞으로 바람이 있으시다면.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합창음악의 기만이 부족하다. 일본만 해도 1만5천여 개에서 2만 개의 아마추어 합창단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 합해도 400~500개 정도다. 당장 인천이라도 동마다 아마추어 합창단을 만들면 수백 개의 합창단이 만들어 진다. 그럼 인천에서 전국 합창대회도 열고 말 그대로 인천은 합창의 도시가 되는 거다. 합창을 통해 인천이 보다 화목하고 즐거운 도시가 되었으면 한다


  

   
 
◇윤학원
▶1938년 10월 26일 인천시 출생 ▶연세대 음악대학 작곡과 졸업 ▶Lowell State University Graduate School에서 합창지휘 수학 ▶1999년 한국음악평론가협회 제15회 음악상 ▶2004년 옥조근조훈장 ▶現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프랑스 노르망디 ‘제4회 합창 박람회’ 프로그램
▶Part1- Misericordias Domini(자비하신 주님), Sanctus(거룩), O Magnum Mysterium(오 위대한 신이여), Gloria(영광/반딧불미사 중에서), GloriaⅢ(영광), Sa ku ra (벚꽃)Sik Sik Si Batu Manikkam, Mo li hua (자스민꽃), Naiman Sharang (여덟마리의 갈색말).
▶Part2- ‘메나리’와 ‘8소성’과 농부가, 옹헤야(보리타작) 등 한국 창작합창곡과 민요를 보 공간음악 등(8가지 웃음소리), 아쟁 산조, 농부가, 한강수타령, 한오백년, 옹헤야(보리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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