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인과 애호가들 사이에 일찌감치 화제가 됐던 공연인지라 이날 연주회장에는 수많은 음악생도들 뿐 아니라 피아니스트 고중원, 강충모.이혜전 부부, 최희연, 김주영, 첼리스트 양성원 등 국내 유명 연주자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공연은 예정보다 약 20분 늦어진 7시 50분께가 되어서야 시작됐다. 장내에는 "연주자 사정으로 공연이 지연돼 양해를 구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깐깐한 완벽주의 기질로 유명한 치머만에게 혹시 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한 추측을 낳게했다.
아니나 다를까. 무대에 등장한 치머만은 연주를 시작하기에 앞서 "콘서트 홀 내의 리코딩 시설 문제 때문에 늦어졌다"며 사과를 했고, 심지어 첫 곡(브람스 6개의 소품 Op.118)을 연주하다 잠시 멈추고 다시 관객들을 향해 리코딩 시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공연 후 만난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치머만이 연주 녹음을 절대 하지 말 것을 요구해 무대 위 천장 마이크까지 전부 없애가며 그러겠다고 했는데도 치머만이 이를 믿지 않아 실랑이가 좀 있었다"며 "그렇다 하더라도 불만을 삭이지 못해 연주 도중에까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홀 안의 연주 모습을 바깥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로비에 설치해 놓은 스크린도 이날 공연에서는 꺼진 채 작동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머만은 불안했던 오프닝의 모습을 이내 떨쳐 버리고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 훌륭히 연주를 마침으로써 과연 대가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첫 곡 브람스에 이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1번', 쇼팽의 '즉흥곡 2번'과 '피아노 소나타 3번'이 차례로 이어졌고 합창석까지 가득 메운 관객들은 숨이 멎는듯한 그의 감정조절과 완벽한 테크닉에 열렬한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피아니스트 최희연 교수는 "치머만의 공연 관람은 이번이 네번째인데 그 어느때 보다 만족스런 연주였다. 특히 공연 직전 불미스런 일이 생기면 연주자에겐 엄청난 부담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에 대한 치머만의 몰입 수준은 경악스러울 정도였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또 "쇼팽 4악장에서 일부 미스터치가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정말 완벽했고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이상적인 피아노의 음색을 들려줬다"며 "그것이 치머만의 능력 때문인지, 그가 공수해 온 피아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마법과 같은 테크닉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날 공연 진행은 끝까지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공연 후 커튼콜에 불려나온 치머만이 관객들에게 "사인회를 갖겠다"며 인사를 했으나 콘서트홀 로비에서는 "오늘 사인회는 없다"는 방송이 흘렀다.
치머만을 기다리던 관객들은 못내 아쉬워하며 상당수 집으로 돌아갔으나 9시40분께부터 사인회는 결국 진행됐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