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본사 이지영
 11월 23일, 대한민국 역사에서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 북한이 연평해병대 부대는 물론이고 민간인 거주지역에까지 무차별로 포탄을 퍼부은 것이다.

지난 25일 취재기자 풀단(공동취재)의 자격으로 연평도로 들어갔다. 높은 파도를 뚫고 3시간 만에 도착한 연평도에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주민들 대신 마중 나와 있었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은 입구부터 음산했다. 행정상 1천70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지만 지금은 ‘주인 없는 섬’으로 변해 있었다.

군의 설명에 따라 포탄이 떨어진 집으로 갔다. 좁은 골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이웃한 집들의 유리창은 산산이 조각난 채 문틀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담벼락도 무너져 있었다. 포탄의 직격타를 맞은 집은 참혹했다. 지붕 반이 날아간 건물은 콘크리트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옆집도 포탄의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까맣게 타 버린 양철냄비 하나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바람이 불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할 말을 잃었다. 수많은 전쟁영화를 봤지만 눈앞에 펼쳐진 진실 앞에 눈물이 맺혔다.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북한의 도발 당시 CCTV에 선명하게 찍혔던 연평면사무소가 그날의 악몽을 기억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주한 연평초교도 인기척은 없었다. 운동장 끝에 학생들이 대피했던 방공호가 보였다. 추위를 막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비닐막이 바람에 나부꼈다. 방공호 안에서는 그날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평화로운 오후 수업을 받던 학생들은 수백 발의 포탄 소리에 영문도 모른 채 이곳으로 피했을 테다. 끝없이 이어지는 포탄 소리와 화염에 학교는 물론이고 연평도 전역은 공포에 휩싸였을 게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졌다.
북한의 도발에 주민들은 한평생 일궈 놓은 삶의 터전을 등지고 피난길에 올랐다. 대피소로에 몸을 피한 주민들은 촛불을 켜 놓은 채, 뭍으로 피난 갈 생각에 동이 트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동이 트자 주민들은 인천으로 피난을 나왔다. 연안부두에서 만난 70대 한 노파는 “우리 집이 포탄에 맞아 폭삭 무너졌다. 아무것도 못 챙겨서 나왔다”며 오열했다. 그러나 아직도 20여 명의 주민들이 연평도를 지키고 있다. 연평해병대에 있는 아들을 버리고, 자식과 같은 가축을 버리고 차마 떠날 수 없다는 거다.

북한이 왜 그러했는지는 아직 명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뜻이 무엇이든 전쟁의 상처는 주민들의 몫이 됐다. 평화로운 일상에서 느닷없이 실전 상황에 빠진 연평도는 아무래도 예전 모습을 찾기는 힘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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