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인천부원중학교 교장

 경제적으로 부유한 맞벌이 부부에게 천방지축으로 대책이 없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은 중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이 되기도 전에 대형 사고를 쳤다. 아침 1교시 시작종이 울릴 때 자기 교실 옆 화장실에 있는 대형 휴지걸이에 라이터로 불을 질러 놓고는 자기 교실로 도망갔던 것이다. 다행히 일찍 발견해서 피해는 미미했지만 학교에서는 방화범을 찾기 시작했다. 그 학생은 친구들에게 자기가 화장실에 불을 질렀다고 떠벌리고 다녔기 때문에 쉽게 어수룩한 방화범을 잡을 수 있었다.
일반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한 그 학생을 담임선생님을 중심으로 전문 상담교사 등이 팀을 이루어서 심층 면담을 해 보니 “그냥, 심심해서…”란다.

그 학생을 여러 가지로 상담한 선생님들은 그 문제 학생이 도덕성·사회성이 매우 부족하고 영웅심만 잔뜩 든 ADHD(주의력 결핍 과다행동 장애)의 학생 같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에는 6학년 담임교사가 그 학생의 엉덩이를 때렸다는 이유로 그 학생의 엄마가 학기 중간에 담임교사를 교체케 해 버린 일도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학생을 교장실로 불러서 개인 면담을 했는데, 이야기하는 중에도 그 학생은 내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학교에 불을 지른 학생치고는 죄의식이 없는 것 같고,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이 학생은 청량음료를 입에 달고 살고 있으며 피자, 과자, 통닭 등을 자주 먹는단다. 야채는 싫어하고 김치는 먹지 못하며, 고기 종류만 좋아하고 아이스크림을 잘 먹는다고 했다. 부모가 바빠서 자기 식사를 챙겨 주지 못하기 때문에 식생활이 건전하지 못하고, 인스턴트 식품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생활을 해 왔다고 한다.

나는 부모님을 면담하고자 했으나 그의 모친만 학교에 나왔다. 그 학생의 부모님은 큰 사업체를 따로따로 운영하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 모든 것을 자식이 원하는 대로 다 사주고,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해 주었단다.
지금까지 그 학생의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사주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학부모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 지나친 관심은 무관심과 마찬가지로 자녀에게 무척이나 해롭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학부모에게 부탁했다. 이제는 과잉 보호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매달 용돈을 주어서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서 쓰고 용돈기입장을 쓰도록 하여 아이가 스스로 알뜰하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라. 언제까지 슬하의 자녀로, 유치원생으로만 가둬두지 마라. 사업도, 성공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사춘기의 자식이 있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자식을 위해서 사업을 잠시 접으면 좋겠다. 제때 엄마의 정성이 담긴,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사랑을 잔뜩 주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라. 지금 고치지 못하면 평생에 부모 마음에 대못을 박는 아들로 자라날 공산이 크다고, 부모의 생활을 확 바꿔 보라고 타일렀다.

그 학부모에게 내가 캐나다에서 본 경험담도 들려주었다.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가라지 세일(garage sale)’을 하는데, 나는 아내와 함께 가라지 세일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곤 했었다. 인상 깊었던 일은 부모가 자신이 쓰던 물건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필요없는 물건들을 고치고 손질해서 자기 집 차고 앞에서 대략 1천 원 정도의 값으로 파는데, 5살 정도의 어린 딸에게도 자기가 가지고 놀던 인형들을 자기 손으로 깨끗이 빨고 손질하게 해서 좌판을 벌여놓고 팔게 하던 광경을 보았던 것이다. 어린 자녀에게 민주주의의 경제 원리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일찍부터 부모가 몸소 보여주며, 실천으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어떤 캐나디안 부부도 있더라고 말이다. 
부모는 아이가 청년이 될 때까지 방임과 과잉 보호 사이에서 중도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부모는 아이가 10대가 되어도 계속 아이 주변을 맴돌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준다. 게다가 아이에게 감정적·정서적으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한다. 내 자녀가 교사나 친구와의 사이에 갈등이 생기거나 어떤 과목이나 과제 때문에 힘들어하면 모든 것을 부모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한다.
이처럼 부모가 아이를 대신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면 역효과가 일어나 아이의 발전에 해로울 수 있다. 아이가 불편한 경험들을 비켜가고, 자신보다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지극한 사랑과 관심에서 당연하다. 하지만 부모가 모르는 것이 있다. 그것이 당장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아이에게서 자신감, 융통성, 의지력, 사회성, 배려의 정신을 배우는 기회를 빼앗는 결과가 된다는 사실이다. 부모의 지나친 관심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통계학적으로 약물남용, 우울증, 불안증의 문제를 겪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건강한 발달을 위해,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 아이들은 어느 정도 실패와 시련, 고통스러운 감정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도전을 사랑하고 실수를 통해 자극을 받고 노력하는 것을 즐기고 계속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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