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고등학교 교장 윤갑희
 2009년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우리나라는 OECD 34개국 가운데 읽기와 수학 분야에서는 1위를, 과학 분야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 연구는 전 세계 65개국이 참여하여 만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읽기, 수학, 과학 분야의 학업성취 결과를 비교한 것이다. 3년 전 평가에서 핀란드에 이어 종합 2위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겠다.
그런데 3년 전 평가에서는 학습효율화지수가 30개국 가운데 24위에 불과하고 학습흥미도는 꼴찌 수준이라는 점이 문제로 제기되었는데, 이번에는 최상위 5% 학생들의 성적 등위가 다소 처진다는 점이 걱정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최상위 5% 이내 성적은 65개 참여국 중 읽기 9위, 수학 5위, 과학 13위라고 한다. 분명 전체 성적(2, 4, 6/65위)에 비해 상위권 학생들의 등위가 처진다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 하겠다.
얼마 전 들은 이야기이다. 지난 여름방학 때 영국에서 각국의 교육학자들이 참가한 학회가 열렸는데, 회의 시작과 동시에 의장국인 영국의 대표가 한국 대표단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네 나라에서는 어떤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과 방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학업성취도가 세계 2위의 성적을 내는가? 그 비결을 이야기해 주시오.” 이에 우리 대표단에서 누군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은 아침 7시 30분까지 등교해서 한 시간 동안 아침 자율학습을 하고 담임선생님이 실시하는 조례를 한 다음 오전에 4시간의 수업을 한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오후에 3시간의 수업을 듣고 청소 후에 2시간의 방과후학습을 한다. 그 뒤에는 학교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22시까지 자기주도학습을 하는데, 특히 고3학생은 한 시간을 더해서 23시까지 자기주도학습을 한다. 그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질문자의 반응은 어땠을까? ‘Crazy’라는 외마디였다고 한다.

학업성취도평가 결과 대단한 성취도를 보였으나 학습효율화지수는 지극히 우려되는 수준이고 최상위 5% 학생의 성취도 등위는 훨씬 처져 걱정스런 시점에, 고3학생들의 수면시간이 평균 5시간 24분에 불과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평균 11시간 3분씩이라는 통계청 조사 결과가 나왔다. 모르면 몰라도 하루 평균 공부 시간은 이보다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학업성취도 수준이 높은 우리나라 중고교생들의 하루 일과에 경악하는 수준의 반응을 보인 외국 학자들에게 최상위 5% 학생들의 성취도 등위가 많이 밀리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혹자는 특목고 천지인 이 땅에 더 많은 영재교육을 위한 학교를 세워야 한다고 핏대를 세울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어림없는 이야기다. 방법은 하나, 최상위 학생들의 성취도 등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학교 현장에서 교수-학습과 평가의 방식을 확실히 바꿔야 한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2010학년도에 모든 중·고등학교의 정기고사 지필평가에 20% 이상의 서술형 문항 출제를 의무화했고, 올해부터는 논술형을 포함하여 매년 10%씩 비중을 높여 2013년에는 50% 이상 반영하도록 할 예정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있지만 참으로 잘 된 일이다.
서술·논술형 평가 문항을 50%씩이나 출제하게 되면 학생들의 성적 등위가 선택형 100%인 현재와는 많이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해결력이 뛰어난 학생보다 암기력 좋은 학생이 우대받는(?) 성적 구도가 허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동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오면서도 바뀌지 않던 교사들의 교수-학습 방법 변화도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다. 서술·논술형 평가문항 50% 이상 도입으로 그 동안 문제로 여겨지던 저조한 학습효율화지수며 흥미도를 개선하고, 그럼으로써 작금(昨今)의 걱정거리인 최상위 학생들의 처지는 등위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관건은 얼마나 서술·논술형다운 서술·논술형 문항을 출제하느냐에 달려 있다. 각 학교마다, 그리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모두가 특단의 노력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서술형다운 서술형 문항 출제로 학습효율화지수 개선에 앞장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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