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깊은 고을은 그곳에 터전을 잡고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한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해 온 집안의 사람들은 온갖 세파에도 그 전통과 자부심을 쉽사리 내던지는 법 없이 꿋꿋하게 지켜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 정군섭 사무국장

대대로 전해오는 종가의 내림음식을 빠짐없이 준비해야 하는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 530년 역사를 가진 인천시 서구 검암동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해주정씨(海州鄭氏)대종친회 인천지회 정군섭(59·우후공파 17대손)사무국장을 만나 문중의 설맞이 풍습에 대해 들여다본다.
-문중의 설 준비는 어떻게 합니까.
▶과거에는 설만 되면 온 동네가 잔칫집으로 변했죠. 그러나 지금은 개발바람으로 그 많던 문중들이 다 떠나고 지금은 50가구 정도가 고향을 지키고 있습니다. 옛날에 비하면 요즘 설은 다소 조용히 보내는 편이지만 그래도 설날은 설날이지요.
과거에는 조상을 모신 사당을 비롯해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한 다음 밤에는 집 안 구석구석에 등불을 환하게 밝혀 뒀지만 지금은 사당이 없어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가족들처럼 새해를 신성하게 맞이하기 위해 설날 아침 문중을 찾아다니며 한 해를 시작하는 세배 인사를 드리는 겁니다.
-설 명절에 가족들이 즐겨 하는 놀이가 있다면.
▶설날 전통놀이로는 윷놀이, 제기차기 등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다른 가족들과 별 다른 것 없이 이 같은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이 중에 제일 재미있는 놀이는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여 서로 한바탕 웃으며 시끌벅적 대화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요.
-문중 며느님들도 명절 스트레스가 있습니까.
▶세상이 많이 변했지요. 요즘 신세대 남자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아내와 함께 설 음식을 같이 만든다고 하네요. 우리 가족은 7형제이니 며느리도 7명입니다.
우리 형제들은 조상님들이 드시는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정성으로 만든다는 생각과 어차피 내 식구들 먹을 음식인데 하는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어 힘들어 하지 않습니다. 식구들·친척들한테 뭐 맛있는 걸
   
 
해 줄까 생각해야지 남 탓하면 스트레스 받게 돼요. 명절 핑계로 맛있는 것 해 먹는다고 생각하면 즐겁잖아요.
-형제분이 7형제시면 설 명절에는 대가족이 모이시겠네요.
▶우리 가족들이 모이면 한 40여 명이 됩니다. 설 명절의 의미가 다른 게 아닐 겁니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여 서로 덕담을 나누며 한 해를 시작하는 것 아닐까요. 가족이 많다보니 조카·손주·손녀들에게 들어가는 세뱃돈도 무시 못합니다(웃음).
-옛말에 나뭇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있는데요, 가족 간의 우애는 어떻습니까.
▶우리 가족이라고 왜 문제가 없었겠습니까. 형제가족 중에 문제가 생기면 숨기지 않고 서로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란 협력해 어른을 공경하고 가족 간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자녀 돌보기를 함께 하므로 심리적 안정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설 명절에 우리 형제들은 지금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이고 있습니다. 형제 가족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집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느끼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합니다. 바로 형제간의 사랑이지요.
-검암동의 유래와 해주정씨(海州鄭氏)문중에 대한 역사를 소개해 주십시오.
▶인천시 서구 검암동은 조선시대에 부평부 모월곳면 소속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바로산 아래 있는 마을’의 의미를 지녔다는 바로뫼촌과 거대한 검은색 바위가 있어 붙여진 검암동의 대표적 지명인 검바위, 또 다른 이름으로 번적 말이라고도 불리어진 자연촌과 간재울, 이 세 자연촌이 모여 검암동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지명에서 보이는 검(黔)은 검단면(黔丹面)의 명칭을 살펴보면 한자를 훈(訓)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음차(音借)한 것이라고 가정하면 신(神) 또는 왕(王)의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검암동은 ‘신 또는 존장의 마을’이나 ‘으뜸되는 마을’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문헌에 나타나는 검암동의 성주 성 씨는 고려시대부터 능성구씨(綾城具氏)가 집단 거주했다고 하며 조선조 초기부터는 해주정씨(海州鄭氏) 7세손인 정희신(鄭希信·1475~1548)이 입향, 그 후손들이 거주를 시작해 530년의 역사 동안 그 후손들이 아직도 다수 검암동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대 명절인 설을 맞아 한 말씀 해 주십시오.
▶요즘 자녀 출산율이 저조해 가족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각종 애경사가 생기지요. 다른 사람의 애경사에 참석해 보면 가족들이 많은 곳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마다 느끼는 것은 자손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새해에는 가족 간에 두터운 우애를 다지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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