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노무관리자’라고 하면 기업에서 노동조합의 반대 편에 서서 기업 CEO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역할로 치부되는 것이 다반사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대한민국 산업계는 강성일로를 겪고 있던 노동조합에 맞서 인사노무관리자에게 힘을 실으려는 기업 총수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잇따랐다.

당시만 해도 인천엔 기업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탓에 인사노무관리자들은 사용자 입장에선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고 한다.

30여 년이 넘게 인사노무를 담당해 온 고한은 ㈜창원 총무부장은 “기업 대표들과 노동조합 운동원들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상황에서 인사노무관리자들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며 “그만큼 기업에서 인사노무관리자협회에 참여하는 비율이 상당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의 꽃을 싹 틔운 노동자들은 1990년대 경제부흥기를 맞을 때만 해도 화려한 봄날을 보냈지만 IMF 한파를 시작으로 시련의 2000년대를 버텨 오는 동안 상당 부분 칼날이 무뎌졌다.

반면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노조의 활동을 당연스럽게 여기는 사고가 자리잡았고, 소규모 사업장이라 할지라도 기업 대표의 노조 탄압보다 직원들의 근로복지로 초점이 모아지기 일쑤였다. 또한 이따금 대규모 사업장에서의 비정규직 복직 논란이 사회 뉴스의 1면을 장식하는 것이 고작이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때 기업의 핵심을 일궜던 인사노무관리자들의 역할도 점점 변화의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사안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 임금단체협약, 노사분규 예방, 노무상담 등의 기본 사무에 충실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어 점차 이웃한 기업들의 인사노무 업무를 서로 공유·체득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여 나갔다.

인사노무 업무를 맡은 지 올해로 3년째인 허범노 E-MAX㈜ 과장은 “인사노무관리라는 범주가 정형적인 규제의 틀로 남기보다 기업 대표와 임직원이 상생의 길을 가기 위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 최근의 인사노무 흐름”이라고 강조한다.

이러자 이들 인사노무관리자를 하나로 모으는 협의회의 역할도 점점 효율성을 중요시하게 됐다. 단순히 회원의 수를 늘리는 것에 무게를 두기보다 참여 기업들이 좀 더 선진화된 인사노무관리에 나설 수 있도록 내실을 기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2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인천인사노무관리자협의회’ 역시 시대의 흐름에 맞춰 기업 쇄신의 안내자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올해로 4년째 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김연국(46)제18대 인천인사노무관리자협의회 회장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인사노무관리자의 역할 변화를 민감하게 여기고 있다.

“노동시장의 흐름이 바뀌는 것에 관심을 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인사노무 사안에 대해 최대한 빨리 정보를 얻어내 이를 같은 고민을 하는 협의회 소속 회원에게 전하는 것에 신경을 쓴다. 우리 협의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기업 안에서만 맴돌다 보면 인사노무와 관련해 세상 이치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몰라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사노무관리자’라는 직함을 달고 기업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해 내는 것. 그게 바로 우리 협의회의 역할이다.”
인천인사노무관리자협의회는 인천경영자총협회 부설기구로 1987년 9월 15일 설립됐다.

금속·기계분야, 비금속분야, 연합분야, 남동분야, 서부단지분야 등 모두 5개의 분야로 나눠 매월과 분기별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 분야당 적게는 25명, 많게는 55명까지 모두 20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분야별로 금속·기계는 이찬희 동국제강 차장이 회장을 맡고 있으며, 비금속분야는 김정하 OCI 차장, 연합분야 김승호 HR-아웃소싱코리아 부사장, 남동분야 김연국 신안포장산업 이사, 서부분야 이찬열 보성인더스트리 이사가 회장을 맡고 있다.

이 중 김 협의회장은 5개 분야별 회장을 대표해 통합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인사노무관리자협의회를 대변해 줄 역사적 사건이 있다”며 그간의 활동 중 가장 눈에 띄는 일을 언급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수없이 건의해 온 ‘주차장법 개선’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협의회 초창기만 해도 기업 인사노무관리자들과 관공서 직원과의 관계가 그리 순탄치 않았습니다. 인천시 공무원을 비롯해 환경청·노동청·경찰서·소방서 등 관계자들과 인사노무관리자들이 연일 전쟁을 치르다시피 했죠.”
공장에서 악취가 나거나 주차라도 규정선에 맞춰 하지 않으면 무조건 단속만 했던 게 당시의 분위기였다는 김 회장의 말이다.

   
 

기업의 현실을 이해하기보다 원리원칙에 의해 단속 일변도의 행정을 펼치다보니 당연히 인사노무관리자들의 관에 대한 불신은 깊어만 갔다.

하지만 인사노무관리자협의회는 단속 위주의 행정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관도 좋고 기업도 좋은 ‘일석이조’의 해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결국 ‘인천시 주차장법 조례 개정’이라는 성과를 이끌게 된다.

“최기선 인천시장 때부터 안상수 시장 때까지 끈질긴 노력 끝에 남동공단의 용적률을 250%에서 350%로 높이게 됐죠. 당시 이 같은 결과의 면면에는 지역 국회의원과 인천시의회 등의 지원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습니다. 다만, 그와 같은 성과가 나온 것에 대해 가장 큰 공신이 우리 ‘인천인사노무관리자협의회’라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죠.”
그러면서도 김 회장은 “어떤 회원도 그 일에 대해 서운하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웃어보였다.

김 회장의 목표는 협의회를 통해 참여 회원들이 기업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는 일에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는 노사·노동 정보는 물론, 각종 노동법률의 적용에 그 누구보다 발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야말로 인사노무관리자협의회가 회원 기업들의 CEO는 물론 근로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우리 협의회의 존재가치는 ‘친기업’이 아니라 ‘기업의 발전을 위해 정보를 교류하는 것’에 있다”며 “기업 대표와 근로자들을 이어 주는 진정한 ‘징검다리’로 거듭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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