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지역적 특성에 적합한 가족 및 여성정책을 개발하고 가족의 기능 강화와 양성평등사회 구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올해로 개원 6주년을 맞는다. 이제는 가족여성연구원만의 색깔을 찾아 변화할 시간이 찾아왔다.
“우리나라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사회 전반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물론 경기도도 예외는 아니죠. 경기도에서 제일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이 여성이다, 가족이다, 떠올리다 보면 20~30대 젊은 여성들이 애를 낳아서 믿고 맡길 데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부분입니다. 이것이 민선4기 때부터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제1공약이었죠. 이런 가운데 현재 연구원에서 저출산 문제 등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지만 그 부분이 미흡하다 싶어서 그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지요. 일전에 보육 문제를 김 지사께 도움 드린 적이 있는데, 그 부분에 있어 시작했으니 마무리 지으라고 원장으로 불러주신 것 같아요.”
취임 1개월 만에 조직을 재정비, 제2의 도약에 여념 없는 (재)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박명순(56)원장을 만났다. 여성으로, 아이의 엄마로, 교육심리학자로 살아온 박 원장의 생생한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한 가족과 여성을 위한 소중한 이야기를 전한다.

박 원장의 원래 꿈은 교사였다. 그러나 집안 권유로 약대를 갔다. 역시 약대는 맞지 않았고, 답답했다. 반복적인 것을 싫어해 특히 더 맞지 않았다고 한다. 제약회사 실험실에서 2년 정도 근무 후 연세대 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을 전공했다. 이후 독일 튀빙겐에버하르트카를대학교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교육학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야 했지만 비용 문제 등으로 독일을 선택했다. 남편의 전공 분야가 독일이 본고장인 막스베버 등의 문화사상사였고 아이들, 가족과 떨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석사 학위 논문을 쓰며 첫 애를 낳았어요. 너무 힘들었죠. 그때는 1980년대 초였기에 우리나라에 (보육시설 등)아무것도 돼 있는 실정이 아니었어요. 대학원을 다니면서 임신하는 경우도 흔치 않았지요. 다행히 대가족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여러 손 빌리며 괜찮았죠. 하지만 독일 유학을 가면서부터 수년간 갈등이 있었죠. 독일에서 아이 하나 갖고 공부하는데도 쩔쩔맸죠. 남편이 외아들이다 보니 시부모님이 하나 갖곤 안 되는데 하시는 것 같아 박사 학위 끝날 무렵 둘째 아이를 낳았어요. 독일은 시설이 잘 돼 있지만 3~4개월 된 아이를 시설에 맡기는 게 쉽지 않았어요. 독일에는 영아전담시설인 ‘호르트’가 있어 그나마 편리하다고 하지만 아이 맡기고 공부하는 데 진저리가 났어요. 그래서 사실 도지사님 생각은 둘째고, 제일 중요한 게 요즘 사회에서 여성들이 양성평등사회로 가고, 일과 가정 양립 문제가 대두되고 있어요. 아이 맡기고 봐 줄 곳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나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그 제도를, 정책을 생각해 냈죠. 책을 찾아보며 나온 것이 아니라, 나의 필요성에 의해 나온 것이죠.”
이처럼 박 원장의 여성, 가족, 유아보육 등 정책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박 원장은 시작한 부분이 있으니까, 마무리도 짓겠다는 각오가 남다르다.
“독일에서 학위 마치고 귀국했을 때 2류 인생을 살아야 했어요. 먼저 교육학 박사 학위는 땄지만 학부가 교육학이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교육학 학위를 미국이 아닌 독일에서 땄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자가 아니란 것 때문에 서류전형에서 불리했죠.”
그 당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보수적이었다는 박 원장은 “이제 이런 상황을 직접 겪어 보니 우리나라에서 학력이 높아질수록 여성이란 것이 얼마나 불리해지는가 생각하다 보니까 여성이란 것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됐어요”라고 했다.
   
 

박 원장이 한국에 돌아온 1990년대 초반의 학계 일자리 사정은 매우 좋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 당시 대학이 양적으로 늘어나면서 교수가 부족하자 이미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전공자들로 교수진 대부분이 충원된 상태였다. 오히려 유학파들이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다.

“한국에 남은 사람들이 유학 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었는데 돌아와보니 오히려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딴 사람들이 전부 교수가 돼 있고, 유학파는 다 강사생활을 하는 거예요. 참담했죠. 더군다나 학부 전공이 약학인 탓에 어느 정도 불이익도 받았고요. 그런 것들이 초창기엔 속상했어요. 게다가 아이 둘을 키워야 하니까 지리적으로 너무 먼 곳은 선택하기 힘들었고요. 그러다 경인여대에 자리를 잡게 된 거죠.”
박 원장은 경인여대에서 13년째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학생처장, 교무처장, 총장 직무대행 등 주요 요직을 지냈다. 김문수 지사와의 인연도 그 와중에 싹텄다.
그는 “20~30대 미혼 여성, 결혼해도 3~4년씩 애 안 낳고 사는 사람이 많다. 물어보면 애 낳아서 키우는 게 두렵다고 한다. 애 낳아서 키우다 보면 경력이 단절되고 직장에선 남성들하고 경쟁을 하는데 인정도 안 되고 애 낳기도 엄두가 안 난다고 한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 그 당시에는 저출산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지 않았다”며 “아이 돌봐주기보다 저출산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우리같이 작은 나라는 국력이 떨어진다. 애를 편하게 키울 수 있게 결혼도, 출산도 쉽게 생각할 수 있도록 경기도에서 다각적으로 각계각층 욕구에 맞는 제도가 있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전했다.

   
 
특히 “아이 돌봐주는 사업이 중점사업이 될 것이다. 그게 시설이든, 가정보육교사든 다양한 사람의 욕구에 맞춰 준다면 출산율은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여성 일자리 부분, 재취업 부분, 여성들은 아이 키우면 경력이 단절되는데 젊은 여성들도 자기 일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아이 키우고 낳고 하는 일로 멈춰지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여성들이 그런 의식을 갖고 자신감과 꿈을 갖고 설계해서 가족, 여성이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며 “또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있는데, 노인들을 보면 여성이 대부분이다. 노인 문제를 보면 70~80%가 여성 문제다. 할머니는 연금 기반도 없고 아직까지 자식이 도와주지 않으면 힘들다. 이 모든 것을 포괄한 사업 구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보육중점사업, 시설 등 기타 다양한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사업을 펼치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도내 여성들이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결혼, 육아 문제를 쉽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것이다. 경력 단절 문제, 애 낳고 애 키우는 문제로 멈추지 않고 자신감을 갖고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결혼, 출산, 육아 등 여러 해결책들을 정책에 접목시켜 좋은 아이디어를 발굴해 내겠다는 것이다.

◇학력
1974년 이화여고 졸
1978년 이화여대 약학과 졸
1982년 연세대 대학원 교육학과 졸
1991년 교육학박사(독일 튀빙겐에베르하드카를대)
◇경력사항
단국대·연세대 강사
1992~1997년 연세대 교육연구소 연구원
1998∼2008·2009년 경인여대 유아교육과 교수(현)
2008∼2009년 대통령 제2부속실장
2011년 (재)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원장(현) 
◇저서
‘학교에서의 남성사회화’(1997), ‘교육심리학’(1998), ‘노인교육과 노인학교’(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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