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등학교와 대학 교육이 제도상의 허점을 드러냄 없이 잘 가르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밑바탕이 되는 가정교육이 안 되어 있다면 이는 모래 위에 세워 놓은 누각 꼴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의 학교교육은 법적·제도적으로 기틀이 서 있고 보장돼 있으므로 그때그때 과정을 밟고 관문을 통과하면 성공적으로 결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정교육은 다르다. 학교교육은 스승의 소관이지만 가정교육은 부모의 몫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원시인으로 살지 않고 문명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교육 때문이라고 한다. 그 교육은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사람은 어렸을 때 먹은 음식 맛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은 생각이 처음 깨이는 때이므로 그때의 사랑의 가정교육은 평생에 걸치는 사고(思考)의 틀을 만드는 교육이라고 했다.

‘집은 있어도 가정이 없다.’ 반대로 ‘집은 없어도 보란 듯이 가정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앞의 말은 우리네 가정교육을 두고 빗대어 말하는 부끄러운 풍자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지금 청소년들의 문제는 심각하다. 청소년들의 성 문란 행위를 비롯해 살인·강도·강간 등으로 인한 범죄가 날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가정교육이 더없이 필요한 시기라고 한다. 내가 배우지 못했고, 가난했고, 일류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마음의 병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많은 부모들이 정상적인 사고의 교육보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가정교육으로 아이들을 길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공부든 운동이든 싸움이든 결코 남에게 지는 것은 안 되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범죄예방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앞으로 청소년들이 폭력·외설물에 물들어 흉폭해지고 도덕이 깨어지면 사회가 타락하고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영상매체의 발달과 컴퓨터 통신망의 발달로 음란·폭력물이 범람해 생기는 모방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자식에 대한 부모교육이 우선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이들에게 이러한 폭력·외설물을 못 보게 하려면 먼저 어른들이 안 봐야 한다. 그리고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자식들에게는 보지 말라고 교육하면서 자신은 음란·퇴폐물에 빠져드는 두 얼굴로 가정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요즘처럼 가치관이 혼돈되고 선과 악이 뒤엉킨 사회 속에서 부모는 변하지 않고 자식을 변화시키려고 부모의 입장과 논리만 강조하고, 이기는 법만 가르치고 지는 법은 가르쳐 주지 않는 잘못된 가정교육을 한다면 그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학교나 사회에서 남을 이해해 주는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이기는 법을 배 속에서 터득하고 나왔다. 그래서 가정이나 학교에서 이를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남에게 지는 법은 부모나 선생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이기는 것보다 지는 일이 훨씬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어른들의 세계이든 아이들의 세계이든 1등은 한 명뿐이고 그 한 명 1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패배와 좌절의 쓰라림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지는 법을 알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 대부분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한 번의 패배에도 쉽게 좌절에 빠지게 되고 나쁜 길로 빠지기 쉽다고 한다. 지는 것을 배운다는 이야기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남의 몫을 존중해 주고 남에게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을 기르는 것으로 반드시 가르쳐야 할 정훈(庭訓)이라고 본다. 가정은 우리가 속한 그 어떤 조직보다 중요하고 필연적인 조직이다. 가정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때 지금 사회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청소년범죄와 모든 사건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해서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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