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추석이 돌아왔다. 뜨겁고 긴 여름내 땀흘려 지은 곡식으로 술과 떡을 빚고 햇과일을 따 조상께 차례 지내는 한가위는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앉아 소슬바람 부는 저녁 햅쌀로 빚은 송편을 먹으며 추석달이 둥실 떠오르는 것을 보노라면 하루하루 살아내느라 삭막해졌던 마음도 넉넉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 추석은 참 아름다운 명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올 추석에는 마음이 넉넉해지기는 커녕 더욱 삭막해 질 수 밖에 없는 이들이 너무 많아 가슴이 아프다. 지난 8월 초 전국에 걸쳐 내린 집중호우에 이어 8월말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루사로 집을 잃는 등 피해를 본 수재민들에게 다가오는 추석은 즐거운 명절이 아니라 잔인한 명절이 될 듯 싶다. 재해대책본부가 집계한 집중호우 피해가 6천300억원, 태풍피해는 5조4천696억원에 달한다니 이같은 통계로 잡히지 않는 수재민 개개인의 물질적·정신적 피해는 얼마나 클 것인가. 아직도 마르지 않은 눅눅한 집에서 침수됐던 가재도구를 챙기고 있는 수재민들에게는 명절이 오히려 서럽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양로원 등에 수용된 이들은 더욱 쓸쓸한 명절을 맞게 될 것 같다. 명절에나 이들을 찾던 사람들이 올 추석에는 수재민 돕기로 몰려 사회복지시설에는 지원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고 한다.
 
그래도 추석은 설과 함께 일년에 두 번 밖에 없는 큰 명절이니 올해도 몇 천만명이 귀향길에 오를 것이다. 정성들여 장만한 음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을 찾아 뵈며 가족과 이웃간의 정을 재확인하는 기회도 갖게 될 것이다. 너나 없이 살림살이가 어려운 올해 추석은 우리 모두 비록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고 함께 하는 명절이 되었으면 한다. 남을 돕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형편도 넉넉하지 않은 것을 우리는 흔히 본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불행을 당했거나 소외된 이웃을 돕지는 못할 망정 과시적인 소비행태로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조성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올 추석에는 명절에 마을을 돌며 음식을 거두어 가난한 이웃에 전해주는 일을 거북놀이 같은 민속놀이를 통해 할 줄 알았던 조상들의 지혜로운 공동체 의식을 되살려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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