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식 인천시 서구체육회 수석부회장
 학교에서 공부가 끝나면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야 집에 왔다. 집에 오면서 집 뒷산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다 왔다. 온종일 참았던 오줌을 개미구멍을 향해 누고는 그 속에서 개미가 떼지어 나오는 것을 보면서 깔깔거리며 웃어댔고 물가의 작은 웅덩이 물을 펴내고 그 진흙 속에서 미꾸라지 잡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가을이면 메뚜기를 잡아 구워 먹었고 산에 올라가 밤 따는 재미로 해지는 것도 모르고 컴컴해서야 집에 왔다. 또 5일장이 서는 장날이 일요일이면 엄마 따라 20리(8km) 걸어 읍내 시장에 따라가 특별히 구입하는 물건도 없이 온종일 구경만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우리 세대는 자연을 보았고, 계절을 보았다. 시간의 흐름도 보았고, 무섭게 웅크린 산도 보았고, 벼락 맞은 나무도, 아무렇게나 고개를 든 꽃도 보았고, 색깔이 변해가는 들판도, 떼지어나는 새와 온갖 곤충들도 보았다. 비록 사람이 북적대는 백화점도 없었고 지금처럼 멋있고 다양한 물건은 없었지만 풍성한 자연을 통째로 본 것이다.

이처럼 성장기에 겪는 다양한 경험은 지적인 성숙이나 정서적인 성숙 등 모든 면에서 커다란 밑거름이 되고, 특히 몸으로 부딪히면서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것을 부모들은 최고의 감각적 실물 교육이라고 생각해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한눈을 팔도록 못 본 체 내버려뒀다. 사실여부는 검증할 수 없으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보면 그것이 두뇌 속에 각인되고 가슴에 새겨지는 것이 어른과 많이 다르다고 한다. 또 아이들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책에서 읽는 것과는 달리 순하고 맑은 아이의 두뇌와 가슴에 강하게 새겨진다는 말이 있다.

그뿐이 아니라 어렸을 때 한눈을 많이 판 아이는 어른이 돼 오히려 한눈을 안 판다고도 했다. 바꿔 말하면 어렸을 때 그저 방안에서 공부만 한 아이가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되는 어른이 돼 한눈을 파는 경우를 더 많이 보게 된다고 한다.

물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다보면 내 자식이 남보다 공부도 잘하고 시험 때 한 점이라도 더 받아야 행복의 길이 열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회교육풍토로 인해 너도나도 학원 과외를 시키는 부모들의 교육철학 때문에 요즘 아이들은 시험공포에 시달리다 있다. 그러다 보니 방학이 돌아와도 자연과 접촉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멀어져가고 있다. 많은 아이들의 하루 스케줄을 들여다 보면 어른들보다 더 바쁘게 짜놓고 스케줄대로 움직이도록 부모가 강요하고 있다. 학교에 갔다 오는 것으로 일과가 끝나지 않는다. 영어. 수학을 비롯해 피아노, 태권도 등 수많은 학원을 들려야 하고 저녁 늦게 집에 와서는 학교 숙제에 매달리다 보면 한마디로 어린 시절 자연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다 놓치고 말게 된다.

머지않아 여름방학이 온다. 부모들은 공부에 찌들어 주눅 들어있는 아이에게 미안해 며칠간이라도 밖으로 내보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쟁 속에서 혹시 다른 아이에게 뒤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고, 또 하나는 세상이 험하다 보니 마음놓고 혼자 내보낼 수 없어 이번 방학도 아이를 붙잡아 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솔직한 부모 마음일 것이다. 하기야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어느 시절인들 세상이 험하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을까? 눈 딱 감고 이번 여름방학에는 단 며칠이라도 아이들이 산으로 들로 쏘다니면서 마음껏 자연과 벗하고 생활하도록 아이들에게 맡겨보는 교육을 생각해보자. 자연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많이 없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보면 그것이 두뇌 속에 각인되고 가슴에 새겨진다고 하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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