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식민지 36년과 6·25전쟁 3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생활을 겪은 나라지만, 이제는 빈곤에서 벗어나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를 도울 수 있는 국가로 바뀌었다.”

   
 
“‘우리의 희생으로 우리의 후손을 잘 살게 하자’는 선대들의 말을 토대로 지금 빈곤과 전쟁을 치르는 나라에게 그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이들 국가를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고기를 주는 것보다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적자원개발이다.”
30년에 걸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한국이 이 나라를 일으키기 위한 중·장기 부흥재건계획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7월 아프간 지방재건팀(PRT)을 뒤따라 들어간 자문단그룹 단장인 박정동(51)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그는 아프간 재건의 설계도를 그리는 작업의 총책임자다.

지난 1년간 자신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귀국한 박 교수를 만나봤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무사히 1년간 아프간의 임무를 마쳤다. 소감은.
▶한국정부에서 아프간 지방재건팀 일을 꾸리게 됐고 여기에 전 세계 33개국이 참여했다. 대부분의 일은 미국에서 많이 하지만 식민지 36년과 6·25전쟁 3년으로 빈곤과 전쟁 속에서 타국의 원조로 연명하던 국가에서 원조하는 국가로 바뀐 한국의 개발경험을 살려 세계에서 가장 극빈지역이라 할 수 있는 아프간의 재건에 동참하게 됐다. 가족들과 지인들의 만류에도 아프간 재건에 참가, 나 역시 전쟁터라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도착 첫날부터 대단히 의욕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 가서는 미군들과 함께 다양한 현장조사로 아프간의 개발전략에 대한 로드맵을 만들었다. 욕심 같아서는 그 로드맵뿐만 아니라 그것이 현지에서 어떤 식으로 재현되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귀국일정으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나름대로는 그 로드맵을 작성했다는 보람도 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밤을 지새워 가면서 작성한 ‘아프가니스탄을 가다’라는 500쪽 분량의 책을 집필하는 등 짧은 시간 많은 성과를 거뒀다.
-아프간은 어떤 나라이며, 현재 분위기는 어떤지.
▶아프간은 지하자원이 1조~3조 달러에 달하는 석유도 있고, 니켈 등의 다양한 광물자원이 있어 지난 1979년 구소련 이후 무려 30년간 전쟁을 계속 치르고 있는 나라다. 국민소득은 세계 최빈국가인 500달러

   
 
정도이며, 평균 수명은 43세에 불과하다. 현지인들이 나를 보며 “당신은 이미 52세다.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았다. 지금 살고 있는 것은 보너스다”라고 말할 때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만감이 교차했다. 이 뿐만 아니라 병원을 가려면 몇㎞를 걸어서 가야 하고, 여성들은 첫 생리를 마치고 나면 ‘부르카’라고 해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신을 가리는 옷을 입고 얇은 망사로 얼굴을 가리고 세상을 봐야 한다. 또 세계 최빈국가에다 마약왕국이다. 전 세계에서 재배되는 양귀비의 95%를 아프간이 제공할 정도다. 아프간이 정상국가로 가려면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려야 하지 않겠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나마 우리나라를 비롯한 유엔의 노력으로 그 시기가 빨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문단 구성은 어떻게.
▶자문단은 기본적으로 경제개발에 중점을 두고 그 하부에 농촌개발·여성문제·직업훈련·의료보건·행정 등 총 8개 분야로 구성됐다. 인원은 각 분야별로 책임자 한 명씩 총 8명으로 이뤄졌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지금 아프간의 상황과 1950년대 6·25전쟁 직후의 한국 상황이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농촌 부문은 우리의 1970년대 실시된 새마을운동을 모태로 삼고 그 방식을 접목시켜 농촌을 일으킨다. 단, 평등하게 나눠 주는 나눠 주기식의 전략이 아닌 마을 간 우수마을과 비우수마을로 구분해 차별적인 지원과 주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포함해 농촌마을을 끌어올리는 그런 농촌개발전략이다. 그러나 현재 아프간에는 이보다 더 큰 문제가 바로 인적자원개발(HRD)이다. 이에 과거 정권이 교육을 등한시했던 것에서 벗어나 교육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초·중·고의 의무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또 일반계고교뿐만 아니라 농·공·상고와 같은 실업교육을 중점적으로 육성시켜야 한다. 이러한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프간도, 한국도 큰 여력이 없다. 결국은 미국이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을 수 있는 여론을 조성해 이왕 쓰는 자금이라면 효율적으로 아프간에 뭔가 남을 수 있는 방식으로 자금을 쓴다면 뭔가 성과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어려운 나라가 아프간 아닌가.
▶한국은 6·25전쟁 3년으로 초토화가 됐는데 아프간은 그 10배 이상이다. 30년 동안 전쟁을 한 국가이니 상상을 초월한다.
-아프간이 어려운 나라지만 그래도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앞으로 아프간도 개발되면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자연환경 하나는 대단하다. 달밤에 쏟아지는 별을 보면서 마치 어린 시절 시골 풍경을 보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자연환경 자체는 탐이 났다. 또 30년 동안 전쟁을 치렀음에도 사람들이 순박했다. 아직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아프간 사람들을 보면서 자포자기에 빠져 있는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지난 아픔을 경험했던 선배 국가로 아프간의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우리가 받았던 소중한 것을 돌려줘야 할 때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한국은 6·25전쟁 전후 태국이 220달러, 필리핀이 167달러일 때 국민평균소득이 76달러에 불과했다. 그런 어려운 시기를 겪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것을 이기고 다른 나라를 도와줄 수 있는 발전을 이룩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지금 빈곤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세계 40억 명이 속한 국가에게 돌려줘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단순히 구호물자를 조달해 주는 단발성 지원이 아닌 고기를 직접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런 부분에 특화된 학교(가칭 ‘P-SCHOOL’)를 세워 빈곤국가 인력을 초청, 석·박사도 배출하는 등 인적자원개발을 추진해야 한다. 현재 그에 대한 밑그림은 그려 놓은 상태다.

-그러면 지금 구상 중이라는 교육사업에 대해 좀 더 설명을.
▶가칭 P-SCHOOL은 빈곤과 전쟁으로 굶주리고 있는 국가의 젊은 리더들을 한국에 불러 정치·경제·사회·의료·교육 등 다양한 부분의 국내 전문가들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아 이들이 다시 자기 나라에 돌아가 한국에서 설립된 학교의 분교를 만들게 하는 것이다. 이들은 선발된 몇 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힘을 빌려 그 나라의 대중들이 한국의 개발경험을 배울 수 있게 해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것이다. 현재 교과부에서의 행정적인 절차 및 법적인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고 학교법인 설립이 필요하다면 학교법인이 갖춰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조사를 마친 상태며, 이런 취지에 동참을 원하는 지인들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진정으로 인류를 위한 봉사, 인류를 위한 가장 뜻있는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가칭 P-SCHOOL 프로젝트의 준비와 무엇이 더 필요한지.
▶학교를 설립하기까지의 행정절차를 마치려 한다. 학교법인 인가를 받는 데 3개월 정도 시간이 필요하고 법인이 학교설립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이런 것과 관련된 서류를 파악하고 있는데 학교법인이 설립되기 위해서는 법인이 가져야 할 재산이 건평 200평(661.15㎡)의 부지를 포함, 40

   
 
억 원 이상의 학교법인 수익자산이 필요한데 이를 어떻게 충당할 것이냐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이에 나름대로 인류를 위해서 참으로 뜻있는 교육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 이제는 우리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자는 게 아니라 나눠 줘야 할 때다. 포탄이 빗발치는 아프간에서 매일 로켓포와 전투기 소리에 잠을 못잘 정도의 굉음을 들으면서도 쏟아지는 별밤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우리가 돌려줘야 할 때고, 앞으로 남은 인생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삶의 목표를 찾았다는 것에서 지난 아프간에서의 1년은 대단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할 것 같은데.
▶몇몇 분들에게 내가 준비한 동영상과 자료를 보여 줬는데 어느 누구도 이 프로젝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너무나 고귀하고 당연히 해야 될 사업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업비가 문제인데 아직 이 일에 동참하겠다는 독지가나 기업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 학교가 빨리 설립돼 분교 역시 캄보디아·아프간·탄자니아 등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많은 국가에 들어서면 신바람 나는 교육사업이 될 것 같다. 한국의 개발경험이 약간이라도 응용돼 고통받는 제3세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끝으로 포부가 있다면.
▶이 학교를 설립해 모든 열정과 쌓아 온 모든 네트워크를 포함한 에너지를 여기에 쏟고 싶다. 그러다 이 일을 위해 온몸을 바쳐 살다가 죽으면 좋겠다.

# 박정동 인천대 교수 프로필
▶대구 계성고 졸
▶도쿄대 경제학 박사
▶베이징대 연구교수
▶하버드대 방문교수
▶캄보디아왕국 경제자문관
▶대통령자문 동북아경제중심 추진위 전문위원
▶국회 한중포럼 자문위원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