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동ㆍ서부 양쪽에서 남.북을 잇는 철도 도로 공사가 드디어 착공됐다. 남쪽의 도라산역과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북쪽의 개성 봉동역과 금강산청년역에서 각각 착공식을 갖고 민족의 동맥을 잇는 대역사를 시작했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사에 일대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다. 하루 전에는 북ㆍ일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개최됐다. 백년숙적이라던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빠른 시일 안에 실현시키기로 합의했다. 정상회담 직후 북측에서는 피랍 일본인 생존자를 일본으로 돌려보낼 의향이 있다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까지 내놓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상상키 어려운 일들이다. 이것만 보면 마지막 냉전의 섬 한반도에서도 본격적으로 냉전구조가 해체되는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듯 하다.

그런가 하면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느닷없이 북한 핵무기 보유를 공식 브리핑을 통해 발표함으로써 미국의 진의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구체적인 물증도 없이 하필 북ㆍ일 정상회담 날짜에 맞춰 민감하기 짝이 없는 핵문제를 직설적으로 건드린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내기는 힘들다. 미국쪽의 불편한 심사가 반영된 발언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최근 며칠 사이에 전개된 한반도 정세에 대해 주변국들의 입장은 이렇듯 극과 극을 달리고 있어 가닥을 잡기 힘들다. 한편으로 낙관적 전망을 불러 일으키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과거청산 등에서 북쪽이 다급한 처지에 몰린 나머지 너무 쉽게 일본쪽 요구를수용하지 않았느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면 타당하게 들리지만 북측에만 초점을 맞춘 일방적 해석이라는 생각이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도쿄로 불러 들이는 대신 자신이 직접 평양을 찾았다. 이 간단한 사실만으로도 일본측에도 정상회담을 가져야 할 급한 사정이 있었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외교 분야에서만큼은 미국 추종국이라는 오명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독자적으로 나섬으로써 자주권을 가진 `보통국가'로서 이미지를 새롭게하는 동시에 점차 약화돼 가고 있는 한반도 영향력 행사에 복권을 노렸음직하다. 더구나 지금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의 연결공사가 시작되면서 러시아의 전통적인 남진정책이 손에 잡힐 듯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시점이다. `조ㆍ일 평양선언'에서 "이 지역의 유관국들 사이의 관계가 정상화되는 데 따라 지역의 신뢰조성을 도모하기 위한 틀거리를 준비"해 나가기로 합의한 것은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수 있게 만든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이어서 우리로서도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중국에다 러시아, 일본까지 끼어 든 한반도 정세는 복잡다단한 상황으로전개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19세기 구한말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변한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다. 남북이 함께 지혜를 모아 한반도의 주인으로서 제 권리를 찾고 제 구실을 다해야 한다.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도로 철도연결도 기어코 성사시킨 전례가 있다. 정부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주변정세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미리미리 치밀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