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의 한 시골마을. 시골아이 특유의 꼬질꼬질한 얼굴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한 손에는 낫을, 또 다른 한 손에는 풀을 쥔 소년은 친구들이 지나칠 때면 나무 뒤로 자꾸 숨는다. 깔끔한 검정 교복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친구들을 보면 중학교도 못 가고 소꼴이나 베는 초라한 자신의 처지가 그렇게 한심하고 싫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세상을 다 갖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40여 년이 흐른 2012년. 꼬질꼬질한 검정 고무신의 소년은 철강회사 회장으로 성장했다.
그가 바로 강창규(57)대신철강㈜ 회장이다.

#인간승리 보여 준 가난뱅이 시골아이 출신
가난을 극복한 CEO라는 평가와 함께 전국 최초라는 수식어를 늘 붙이고 다니는 그가 최근에는 ‘제21회 인천시 산업평화대상(사용자부문)’을 수상하며 인간승리를 보여 줬다.

산업평화대상은 인천시와 인천경영자총협회, 한국노총 인천본부 등이 노사 화합과 산업평화 정착, 고용안정 등에 기여한 회사 및 노동조합에 주는 상으로 인천지역 경제계에서는 많은 의미를 함축한 상이다.

창립 제24주년을 맞은 대신철강(인천시 서구 경서동)은 직원들이 장기 근속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전체 직원의 30% 이상이 20년 이상 근속하고 있고 청년실업자 채용은 물론 정년을 넘긴 직원들의 고용도 책임지고 있다.

또 계속된 경기침체에도 꾸준한 임금 인상을 통해 이직률을 최소화하는 등 고용안정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 점과 산재율 및 노사분규 제로(0)화를 달성한 공로도 인정됐다.

이번 산업평화대상은 강 회장의 경영철학인 ‘인덕경영(仁德經營)’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대신철강은 이미 업계에서 최고로 꼽히며 최초의 수식어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국내 고철업계 대부분이 무자료 거래를 하던 시절에 100% 세금계산서를 발급해 투명한 거래문화를 정착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업계 최초로 ‘국세청장 표창’을 수상했으며, 업계 최초로 ‘국제품질표준인증(ISO)’도 획득했다.

여기에 철강산업의 기초 원료인 철스크랩(고철산업)은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음에도 국내에서는 산업자원부 품목(코드)에도 등록하지 못하는 등 비전 없는 분야를 강 회장의 주도로 산업자원부 품목으로 등록시켜 현재는 ‘산업의 쌀’로 인정받고 있다.

이 공로로 강 회장은 지난 2000년 업계 최초로 ‘신(新)지식인’에 선정됐으며, 철강업 유통구조개선 유공으로 역시 업계 최초로 ‘산업자원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물이 오늘의 대신철강을 만들어 냈고 연매출 2천200억 원대(계열사 포함)의 철스크랩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단돈 170원 들고 16살 때 무작정 상경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40여 년 전, 16살 소년 강창규가 가슴속에 품었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단돈 170원을 들고 상경하면서부터 시작됐다.

6살에 부모를 잃고 이웃의 도움으로 겨우 연명하며 초등학교에 다녔던 소년은 배고픔을 이기려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는 볶아 먹고 몸통은 닭 농장에 팔아 용돈을 마련했고 병아리·강아지 등 돈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
그렇게 모은 170원으로 16살이 되던 1970년 서울행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용산역에 도착했다. 더벅머리에 낡은 군복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검정 고무신을 신은, 그야말로 상거지가 따로 없는 몰골로 잡은 첫 직장이 당시 성북구 종암동의 쌀가게인 ‘경기상회’다.

   
 
이렇게 시작된 서울생활은 국수 배달, 쌀 배달, 연탄 배달, 화장실 청소 등 꿈을 위해 밑바닥 생활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전선제조회사에 입사해 오늘의 기업을 일구는 계기가 된다.

강 회장은 미다스의 손처럼 하는 일마다 분명한 성과를 만들어 내는 뚝심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2002년 지방선거 때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로 전국 남자후보 유일의 1순위 공천자로 당선된 이후, 이어진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부평 3선거구에서 재선돼 인천시의회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역시 업계 최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인천서부산업단지에서도 괄목할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07년 이사장에 당선된 이후 만장일치로 재추대돼 현재까지 이사장을 맡고 있는 강 회장은 친환경 클린공단 조성사업과 함께 산업단지구조고도화 추진, 장학사업, 시내버스 노선 신설 등 서부공단 입주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실천하고 있다.

이와 함께 2004년에는 한국자유총연맹 인천시지부 제8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현재까지 내리 3선을 지내며 3만4천여 명이던 회원을 5만3천여 명으로 확대시키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7년 10월에는 ‘여성자유시민대학’을 개설해 현재까지 12기, 95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매년 사랑의 일일찻집을 통해 얻은 수익금 1억여 원으로 불우이웃에게 쌀 3천 포씩을 지원하고 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회사 운영과 사회활동
특히 지난해 6월에는 세계 137개국, 700여 명이 참석하는 ‘세계자유민주연맹 아태자유민주연맹’ 연차총회를 인천 송도에 유치해 인천의 발전상을 전 세계에 알렸으며 이 공로로 ‘국제자유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울러 대통령 자문기구인 평통 인천지역회의 부의장(차관급)으로 임명돼 통일 역량 강화를 위한 각종 워크숍 및 포럼 등 다양한 활동도 펼치고 있다.
이렇게 회사 운영은 물론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는 강 회장은 하루가 빠듯하다. 오전 6시 집에서 서구 금곡동 공장에 들러 결재와 보고를 받은 후 서부산업단지 내 1공장으로 향한다. 다시 간단한 볼일을 마친 강 회장은 이사장으로 있는 서부산업단지 공단본부에서 결재를 한 후 자유총연맹 인천지부를 둘러 평통 인천지역 사무실까지 그의 일정은 늦은 밤까지 계속된다.

강창규 회장은 “과거에는 단순히 생계 유지로 시작했던 철스크랩 업계가 이제는 우리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식량’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어렵게 살아온 만큼 이웃과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