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은 조선시대에도 골칫거리였다.

 “성문 파수를 위해 파견한 장교와 군졸들이 대낮에 술병을 들고 칼을 뽑아들기도 하고 시장에서 술을 강제로 요구하는 등 폐해가 심하므로 현장에서 발각되는 즉시 처벌하라.” 조선시대 중앙 군영 훈련도감(訓鍊都監)에 관한 기록을 담은 ‘훈국등록(訓國謄錄)’ 영조 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영조는 일반 백성에게도 낮술에 취한 군인을 발견하는 대로 잡아 군 당국에 고발하라고 지시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정정길)은 조선시대 사회사 자료의 보고(寶庫)인 ‘훈국등록’ 영인본을 발간했다.

 ‘훈국’이라고도 불렸던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중인 1593년(선조 26년)에 설립된 조선 후기 최대 중앙 군영. 1882년 군제 개편으로 해체될 때까지 약 300년 동안 국왕의 호위와 도성의 경비를 담당하며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제적으로는 군대의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조성한 둔전(屯田)의 확대, 군수 광공업의 성장, 상업의 발달 등을 가져왔다.

 서울에 상업인구가 증가하면서 주택, 위생, 범죄 등 각종 사회 문제도 낳았다.

 ‘훈국등록’에는 훈련도감에서 매일 처리한 업무를 비롯해 훈련도감과 관련된 조정의 논의 내용 등이 일지 형식으로 상세하게 수록돼 있다. 군제의 변화, 도성 수비, 국왕 호위, 각종 시험 및 포상, 인사, 재정 관련 기록은 물론 호랑이 출몰 등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이 적지 않다.

 “북악산 근처에 출현한 호랑이를 잡음”(1826년 2월 29일), “경모궁 후원의 호랑이를 잡기 위해 훈련도감 장교와 포수 파견”(1844년 1월 11일), “지붕이 없는 가마는 부녀자, 급한 환자, 구타당한 자를 제외하고 금지. 금령을 어긴 자는 장(杖) 100에 도(徒·징역) 3년의 율로 다스린다.”(1791년 7월 29일)
 지금까지 남아 있는 훈국등록은 총 91책. 한중연은 이번에 1618년부터 1881년까지의 내용이 담긴 1~19책을 7권으로 영인 발간했으며, 앞으로 5년 동안 91책 전체를 총 40권에 묶어 펴낼 계획이다.

 해제를 쓴 김종수 군산대 교수는 “훈국등록은 조선 후기 정치, 경제,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훈련도감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자료”라며 “당시의 현실을 생동감 있게 보여 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해은 한중연 선임연구원도 “승정원일기나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연대기 자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내용들이 수록돼 있다”며 “조선 후기 군제사는 물론 왕실 및 사회사 자료의 보고(寶庫)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