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이웃 나라 일본과 중국인조차 함부로 들어와 사는 것이 금지됐고 합법적으로 우리 땅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의 범위도 제한돼 있었다. 하지만 조선에 왔다 간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 꽤 있었다.
세종 시기 명나라 칙사들부터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사행과 같은 국가 간 사신 왕래, 하멜로 대표되는 표류, 학술조사 차 배를 타고 건너온 학자들까지. 이들의 눈에 비친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새 책 ‘세상 사람들의 조선여행’은 조선 땅을 밟았던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200궤짝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뇌물을 챙겨 돌아간 명나라 칙사 윤봉, 말(馬)·붓·양가죽을 무더기로 사갔던 일본 사신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인으로 조선에 온 미얀마 군인,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조선의 야

   
 
생동물을 조사한 스웨덴의 동물학자 스텐 베리만 등 저마다 이야기가 흥미를 자아낸다.
특히 17세기 중엽 폭풍우를 만나 제주도에 떠내려 왔다가 본의 아니게 13년간 조선에 살았던 하멜은 낯선 조선 땅에서 느꼈던 절망과 희망은 물론, 조선의 풍속과 문화를 세세하게 기록했다.
“독신 남자가 유부녀를 간통하면 그의 얼굴에 석회를 칠하고 두 귀에는 화살을 찌르며 등에는 조그만 북을 붙들어 매게 한 뒤 네거리에서 그것을 두드리며 치욕을 보임.”, “방바닥 아래에는 오븐 같은 것이 있는데 겨울에는 날마다 불을 때어 따듯하게 함.”
비교적 오랜 기간 조선에 머물렀던 서양 선교사들도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제5대 조선 천주교 교구장을 지낸 프랑스인 마리 다블뤼 주교는 조선 사람들이 따뜻한 가족애를 지녔다고 기록했다.

“조선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을 끔찍이 생각하며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에서는 딸이든 아들이든 어떤 자식도 내버리지 않습니다. (중략) 자연의 가르침에 순종해 조선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솔직하게 받아들입니다. 가난하다고 자녀들을 내버리는 유럽 사람들은 창피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의 조선에 대한 인상은 부정확하거나 편견에 치우친

   
 
경우가 많았다. 조선총독부의 협조 아래 한반도 구석구석을 누비며 야생동물 정보를 수집했던 동물학자 베리만의 시각도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일본인들은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공동체보다 개인을 중요시하며 한국인들이 유구한 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있긴 하지만 힘든 일을 하려 하지 않고 앉아서 긴 담뱃대를 물고 담소하기 좋아한다고 소개했다.

책은 이방인의 눈으로 본 조선을 그림과 지도, 사진 같은 시각자료를 더해 이해를 돕는다. 줄기에 매달린 오이 형상에서부터 근대의 정교한 지도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일본이 그린 조선 모습의 변천을 쫓아가다 보면 조선이 동아시아와 세계 전체라는 상상적 공간 속에서 부여받은 위치와 의미를 드러내는 심상지리의 역사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