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하고자 하는 정신력만 있으면 무엇이든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내일을 위해 오늘 노력하는 사람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고 변화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충북 음성에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와 사진 외길 인생을 걸어 온 유해준(60)한국프로사진협회 회장.
연매출 40억 원에 5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스튜디오 브라보(인천시 남구 도화동)를 운영하며 2천여 회원을 보유한 한국프로사진협회를 이끌고 있다.

 18살에 170원 갖고 혈혈단신 상경
가난 속에서 체육특기생으로 체육인의 꿈을 가졌지만 부상으로 인해 운동을 접고, 많은 고민 끝에 당시 사진관을 운영하는 친척 형님의 권유로 18살 어린 나이에 달랑 교통비 170원을 갖고 상경해 사진을 시작했다.
그 당시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전문교육기관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선배들 밑에서 온갖 잡일과 허드렛일을 하며 고단한 생활을 참고 견뎌야 했다.
유 회장은 “처음에는 적성에 맞지 않아 몇 번이나 낙향을 생각했지만 기왕 시작한 일이고 막연히 노무자로 일하는 것보다는 프로사진가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술회한다.
물려받은 재산은 없었지만 다행히 타고난 강인한 체력과 승부욕, 무엇이든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정신력 하나로 남들보다 노력하고 하나라도 더 열심히 배웠고, 항상 노력하고 준비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찾아온다는 말을 믿고 묵묵히 노력한 결과 남들은 7~8년에 걸쳐 배워야 얻게 되는 기사자격을 2년여 만에 해냈다.
기사가 된 후에도 힘든 일은 계속됐지만 근면함과 성실함을 인정받아 어린 나이지만 사진관의 관리기사가 됐고, 매출도 5배나 신장시켰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사진관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것을 배우게 됐는데, 아마도 지금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데 가장 튼튼한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1973년 상경 5년 만인 23세에 당시 56만 원으로 인천에서 창업을 했다. 보증금 5만 원에 사글세 7천 원. 처음 영업을 시작할 때 주위에서는 그 자리가 사진관을 하다 6명이나 망해 나간 자리라며 몇 개월을 못 넘길 것이라고들 했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안 될 것이라고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안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려움이나 일에 방해물이 생기면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결국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든 일을 해내는 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떤 일도 해내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유 회장.
사진관은 사진만 잘 찍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찾아오는 고객마다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남들과는 차별된 전략으로 일을 시작했고 또한 사진을 촬영한 고객이 다시 사진관을 찾도록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잠자는 시간도 줄이고, 일주일에 밥은 3끼만 먹고 국수로 18끼를 때우며 일에 몰두했다. 또한 다른 성공한 사업장의 사업 방법도 도입하고, 좋은 인재와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피나는 노력으로 사업을 번창시켰으며 이러한 것들이 점차 성과로 나타나고 사진관 매출도 증대됐다.

창업 4년 만에 2층에 사진관이 있는 건물을 당시 880만 원에 매입했다. 그 시절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던 때라 이를 롤모델로 삼아 사진관 발전계획을 세워 단계별로 시행했고, 현재도 추진하고 있다.

        졸업앨범 사업으로 성공 기틀 다져
이렇게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1975년 동인천중학교와 동인천고등학교 등 2개 학교 앨범으로 시작해 현재는 초·중·고 50여 개 교와 대학 16개 교의 졸업앨범을 제작하는 졸업앨범 전문 스튜디오로 거듭나 있다.
전국 1만여 개 스튜디오에서 매년 열리는 졸업앨범 품평회에서 8년 연속 수상의 입지전적인 기록을 세웠으며, 2007년 최우수특별대상을 수상한 후에 후진들을 위해 출품을 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성과 역시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남들과 차별화된 작품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뤄 낸 것이다.
그후로도 사업을 스튜디오 개발계획에 맞춰 단계별로 성과를 체크, 계속 확장했으며 2004년 도화동 현 사옥으로 이전했다.

 
     베이비, 가족사진 전문스튜디오 오픈
인천에는 서울의 유명한 스튜디오들처럼 역사와 전통을 가진 명품 스튜디오가 아직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졸업앨범 사진 제작에서 습득한 사진에 대한 노하우와 30여 년 동안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경험한 스튜디오 운영 방법 등을 접목시켜 베이비와 가족사진을 전문적으로 하는 좋은 스튜디오를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2007년 베이비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이 일에는 좀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관리를 할 필요성이 느껴져 좋은 인재를 많이 영입하고 스튜디오 시스템을 전문화 및 현대화했으며, 법인으로 인가해 베이비 스튜디오 부서와 졸업앨범 제작부서로 분리했다.

   
 
총 5개 층의 현 사옥 브라보 빌딩은 지상 1층부터 지상 3층은 베이비 스튜디오로, 지상 4층은 졸업앨범 제작부서 사무실로, 지하 1층은 작업실로 활용하고 있다.
인천시 동구 화수동에서 시작한 20여 평(66.11㎡)의 스튜디오를 지금은 대지 300평(991.73㎡), 건평 500평(1천652.89㎡)의 사옥에서 50여 명의 직원과 함께 연매출 35억~40억 원 정도를 달성하는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한국프로사진협회 회장직 수행
유 회장은 사진협회 참여 동기를 “과거 스튜디오들은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사진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그러한 노하우들이 발전을 방해했다고 생각했다”며 “스튜디오를 성장시킬 수 있는 노하우를 함께 공유하고, 스튜디오 종사자들이 서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찾던 중 몸담고 있던 한국프로사진협회에서 할 일을 찾아보자 결심하게 됐다”고 말한다.

2005년에는 한국프로사진협회 인천지회장에 선출됐다. 당시 한국프로사진협회 인천지회는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곳 중 한 곳이었으나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1년 후에 인천지회를 전국 최우수지회로 이끌었으며, 당시 만연해 있던 선후배 간의 갈등과 지회와 앨범조합 간의 깊은 골을 모두 해소하는 등 지회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또한 2007~2008년엔 협회 이사로서, 2009~2010년엔 한국프로사진협회의 재무수석으로서의 소임을 다했다.
2011년 ‘좀 더 당당하고 잘사는 협회, 회원들 간의 따뜻한 정이 있는 협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흐름 속에 한 발 앞서 나갈 수 있는 협회를 만들자’는 뜻을 가지고 제33대 한국프로사진가협회장 선거에 출마, 당선돼 3만여 프로사진가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1년여가 지난 현재 모든 회원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변화하고 자기계발을 통해 좀 더 나은 협회로 변화·발전돼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면 된다는 것’,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고 한다.
유해준 회장은 “부정적인 태도는 일을 안 되게 만들고, 된다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태도는 일을 성공하게 만듭니다. 자신이 배우고 느낀 많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라며 “하고자 하는 정신력만 있으면 무엇이든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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