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속담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서도 유효한 듯하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꿈꾸고 부러워한다. 최근 방송되고 있는 한 광고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힘든 회사 일에 사표를 쓰려고 마음먹은 직장인들의 고단함을 취업준비생은 부러워한다. 반면, 누워서 무료하게 TV를 보는 취업준비생의 모습을 군에 간 이등병은 부러워한다. 그러나 사표를 쓰려는 그 직장인들은 군 생활을 하는 이등병의 모습을 부러워한다. 제대만 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때 그 시절의 패기와 용기를 그들은 부러워했다. 얼마나 행복하느냐는 질문에 선뜻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언제부터인가 행복한 시간은 과거 혹은 미래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진정 행복이란 것은 감성어린 과거의 한때와 언젠가는 다가올 미래에만 존재는 것일까?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오늘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문사의 칼럼니스트로 일하는 벤자민은 두 아이의 아버지로, 그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은 벤자민 자신에게도 힘든 일이었지만, 아직 어린 두 아이들에게도 크나큰 아픔이었다. 이에 벤자민은 환경을 바꾸고자 한다. 우선 새로운 환경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거란 판단에 교외로의 이사를 결심한다. 마땅한 장소를 찾던 중 벤자민과 아이들의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 집은 폐장 직전의 동물원이 딸려 있는 집으로, 집을 살 때 반드시 동물원도 인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어이없는 매매조건이었지만 환호하는 어린 딸아이의 모습에 벤자민은 그 집을 구입하기로 결정한다. 딸이 좋아하는 동물원이 딸린 집을 구매한 아버지 벤자민. 더없이 자상하고 좋은 아버지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벤자민의 이런 성향은 자신의 행복을 막아 온 원인이었다. 그는 과거에 행복했다. 그러나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아내가 있어 그는 과거에 행복했다. 그러나 아내가 떠난 지금, 그에게 웃을 일이란 더 이상 없었다. 비록 자신의 마음도 추스르지 못한 벤자민이지만 그는 여전히 두 아이의 아버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힘을 내야 했다.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그는 더 열심히 아버지 노릇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그의 삶엔 자신에 대한 사랑은 빠진 채, 타인에 대한 사랑만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늘 공허함을 느꼈다. 열심히, 어쩌면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의 삶은 허전했고 허무했다. 이에 벤자민은 사육사로 일하는 켈리를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변하게 된다. 그녀에게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언제나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주변의 모든 것들과 교류하며 생생하게 삶을 채우고 있었다. 벤자민은 그녀를 보고 느끼게 된다. 행복이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며 얻어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채우고 기꺼이 나누는 것이란 걸 말이다. 자신을 되찾음으로써 삶의 활기를 찾은 벤자민은 정해진 역할과 기준을 통해서가 아닌,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그의 가족을 돌보고 다시 개장할 동물원의 모습도 갖춰 나간다.

이 영화를 통해 바라본 행복이란 과거나 미래의 시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며 정해진 기준도,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행복이란 자신 안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 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눔으로써 주변을 더욱 밝고, 풍성하고,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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