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음악문헌학자 겸 슈베르트 음악사가인 오토 에리히 도이치(Otto Erich Deutch. 1883-1967)는 슈베르트 최후의 피아노 소나타 세 곡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슈베르트가 남긴 최후의 피아노 소나타 세 곡은 서양음악사에서 왕관과 같이 빛나는 작품들이다. 음악의 영원성에 대한 동경과 우주의 영겁회귀적 본질을 이처럼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도이치가 언급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는 다단조인 D.958, 가장조인 D.959,내림나장조인 D.960(슈베르트의 작품번호는 도이치의 이름을 따 'D'로 표시한다)을 가리키는데, 모두 슈베르트가 타계하기 1년 안에 쓴 작품들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리트(Lied.독일예술가곡) 작곡가로만 널리 알려졌던 슈베르트를 베토벤에 버금가는 위대한 작곡가의 반열에 끌어올린 작품이 바로 이 3곡의 피아노 소나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알프레드 브렌델, 빌헬름 켐프,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등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연주가들도 슈베르트의 이 후기 소나타들에 매료돼 여러 장의 음반을 남겼다.

근래 전세계 주요 콘서트홀 무대를 종횡으로 누비며 차세대 거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노르웨이 출신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32) 역시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38)와 공동작업한 슈베르트 신보를 EMI를 통해 선보이며 이 대열에 합류했다.

「피아노 소나타 가장조 D.959」와 함께 「방랑자의 노래 D.789」「불행 D.713」「강물 위에서 D.943」「별들 D.939」 등 네 곡의 가곡을 수록했다.

노르웨이 리소르에서 열린 실내악 페스티벌에서 만난 이들은 슈베르트에 대한 서로의 애정을 금세 확인할 수 있었고 곧바로 의기투합해 음반을 냈다.

최근 리트 가수로 한창 각광받고 있는 보스트리지 역시 1996년 슈베르트의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음반으로 그라모폰상을 수상하는 등 일련의 슈베르트 가곡 앨범을 통해 이 작곡가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드러낸 바 있다.

안스네스가 연주하는 슈베르트 소나타를 브렌델 등의 연주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북구의 짙푸른 바다를 연상시키는 차갑고 이지적인 음색과 통찰력이 돋보인다.

그의 음색이 왜 그렇게 차갑게 들리는지는 상당 부분 미스터리이지만 절제된 페달링과 푸른 빛이 돌 정도로 명징한 음색, 과도한 감정이입을 배제한 악보의 신즉물 주의적 해석은 발터 기제킹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슈베르트 말년의 가곡들을 노래하는 보스트리지의 음색은 과거 음반을 통해 선보였던 그의 특징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다소 병약한 듯하면서도 극도로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이 녹아든 서정적인 목소리는 한 소절만 들어봐도 금방 '아, 보스트리지구나'하고 느낄 만큼 개성적이다.

기교를 과시하는 구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고 탐구적인 자세와 지적인 통찰력이 돋보이는 안스네스의 피아노 반주는 보스트리지의 음성과 썩 잘 어울리는 콤비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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