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미국의 내륙 깊숙한 산골에 우직한 남편과 착한 아내 그리고 7살짜리 딸과 3살짜리 아들은 평화롭게 살았다. 어느 날 며칠동안 남편이 시내에 나간 사이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려던 엄마는 땔감을 찾아 장작더미를 뒤지다 그만 독사에게 물리고 말았다. 독이 순식간에 몸으로 번지면서 의식이 희미해졌지만 엄마는 자신이 죽은 후 아이들이 굶어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큰딸에게 불지피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아이들 손이 닿는 곳에 먹을 것을 놓아두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자신이 깨어나지 않더라도 놀라지 말 것과 아빠가 올 동안 사이좋게 지낼 것을 당부하고 숨이 턱까지 차 오르는 순간까지 물 흐르듯 쏟아지는 눈물과 땀을 훔치며 몸을 아끼지 않고 음식을 만들어나갔다. 그렇게 흘러내린 땀이 그녀의 독기를 제거해 하룻밤이 지났지만 그녀는 죽지 않았다. 죽음 직전까지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땀을 흘린 어머니의 사랑은 강했던 것이다. 얼마전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30대 주부가 3명의 자녀와 함께 동반 투신한 사건은 세상의 각박함과 그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넘어 많은 사람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각박한 세상에 남겨두느니 차라리 함께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어머니로서 자식에 대한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었겠지만 어린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해 저지른 살인행위로 삐뚤어진 사랑의 표현일 뿐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몸을 빌어 태어났지만 세상에 태어난 순간,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받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리는 자식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하는 의무로서의 성격이지 그들의 생명과 의지를 박탈할 수 있는 권리는 없는 것이다. 뚜렷한 생계대책 없이 자식을 줄줄이 낳았던 예전에도 제복은 제가 타고난다며 위안을 삼으며 자녀를 키웠다. 어머니의 사랑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식의 생명까지 좌지우지하겠다는 집착은 안될 말이다.
(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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