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쌍둥이가 엄마의 자궁속에서 2개의 완전한 태아로 분리돼 자란다면 샴쌍둥이는 이 상태에서 조직분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몸의 일부분이 붙어서 태어난다. 1811년 가슴이 붙은 채 태국에서 태어난 창과 앵에서 샴쌍둥이의 명칭이 유래됐는데 `샴'은 지금의 태국을 뜻한다. 이들은 28세가 되던 해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정착했는데 이곳에서 영국인 자매와 결혼해서 각자 10명과 11명의 자녀를 두며 60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샴쌍둥이는 태어날 확률이 5만분의 1이 넘고 생존할 가능성도 희박해 지금까지 알려진 결과 첫 돌을 넘긴 경우는 500건 정도이고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한 경우는 단 4건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5쌍의 샴쌍둥이가 태어나 현재 분리수술을 받은 1명과 수술을 받지 않은 한쌍만이 살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초의 샴쌍둥이 분리수술은 지난 90년 한양대에서 있은 가슴과 배가 붙은 남자 아이들이었는데 이 수술을 성공으로 94년에는 엉덩이가 붙은 여자 쌍생아를, 96년에는 가슴 아래뼈부터 탯줄까지 붙어있고 간 일부가 연결돼 있는 생후 5일된 샴쌍둥이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샴쌍둥이는 장기와 뼈가 여물지 않는 상태에서 수술해야 성공률이 높기 때문에 성인이 돼서 수술을 받는다는 건 목숨을 담보로 한 도전에 가깝다. 최근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든 이란의 샴쌍둥이 비자니 자매의 죽음이 이런 경우다. 이들은 머리가 서로 붙은 채 29년을 함께 살았는데 성인이 된 후 뒤늦게 수술을 원했던 이유가 `거울없이 서로의 얼굴을 보고싶다'는 것. 평소 활달한 성격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자매는 수술의 성공률이 낮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했다. 이들을 수술했던 의료진의 공식적인 논평이 없지만 현재로서는 두개골과 뇌를 보호하는 뇌막 사이에서 예기치 못했던 출혈이 발생했고 이를 멎게 하지 못한 것이 수술 실패의 원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자니 자매는 자신들의 수술이 성공했더라도 한명은 대체 장기가 없어 죽을 확률이 컸는데도 나머지 한명이 온전한 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랬다고 한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삶에 대한 애착이 컸던 비자니 자매에게서 새삼 생명의 소중함과 혈육의 정을 느껴본다. (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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