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충돌로 인해 지구 종말이 예견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느닷없는 질문을 던질까 한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혹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간 못해 본 것들을 원 없이 다 해 봐야 할까, 차분히 그간의 인생을 정리해야 할까, 아니면 영화에나 있음직한 지구특공대들이 우주로 날아가 우리를 향해 돌진하는 행성을 미리 파괴해 큰 충돌이 발생하지 않기를 응원해야 할까? 오늘 소개할 영화 ‘멜랑콜리아’는 느닷없는 이 질문에 나름의 대답을 풀어가는 작품이다. 그러나 기존의 영화에서 봤음직한 이야기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 이 작품은 지구 종말이 다가오는 시간, 저스틴과 클레어라는 자매의 우울과 불안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동생 저스틴의 결혼식 날, 웨딩플래너를 자처한 언니 클레어는 불안하다. 예식 시간이 두 시간을 훌쩍 지났음에도 신랑·신부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이나 늦어서 겨우 도착한 신랑과 신부. 그러나 저스틴은 기다리는 손님들은 안중에도 없다. 사실 그녀는 이 결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혼식의 외형이나 혹은 남편이 될 마이클이 싫다는 게 아니다. 결혼이라는 과정이 저스틴의 의도와는 달리 급하게 전개됐다는 불편함을 털어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저스틴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행복해야 할 결혼식. 그러나 마음속 불편함은 우울증을 더욱 강하게 불러들였다. 그 결과 그녀의 결혼식은 엉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예식의 하이라이트는 신랑인 마이클이 그녀를 떠나는 것으로 종결됐다. 이후 더욱 심해진 우울증으로 저스틴은 언니의 집에서 간호를 받으며 살아간다.
한편, ‘멜랑콜리아’라는 이름의 거대한 행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한다는 뉴스에 클레어는 불안해진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행성 충돌이니 지구 종말 따위는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런 남편과는 달리 클레어는 점점 더 불안하기만 하다. 반면 우울증으로 무기력하게 지내던 저스틴은 행성 충돌에 관한 소식에 의외로 차분함을 되찾는다. 저스틴은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의연해 보인다. 그녀는 불안과 공포에 떠는 언니와 언니의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최후의 순간까지 담담함을 잃지 않는다.

이 작품 ‘멜랑콜리아’는 기존의 영화 보기 관습으로 바라보기엔 불편한 작품이다. 지구 종말, 행성 충돌 등의 이야기는 SF영화나 재난영화의 주요 소재거리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건 디스토피아적인 결론을 내던 간에 분명한 서사구조와 갈등의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명확한 줄거리도 갈등도 분명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사실 앞서 밝힌 이 작품의 내용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이 영화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멜랑콜리아 행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엔딩뿐이다. 그 엔딩에 앞서 2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보게 되는 파편화되고 분산된 숱한 이미지들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행성 충돌로 인한 종말에 관한 스토리로 단순하게 결론짓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분명 그 이상을 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이 작품은 인과관계를 중심으로 이미지를 배열해 서사를 전개하는 기존 영화와는 달리, 이미지들의 분산과 감각자극을 통해 다중의 서사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고로 이 작품의 해석은 철저히 관객의 몫이다. 조각나고 분산된 이미지들을 관객 스스로가 어떤 배열과 어떤 무게중심으로 엮어 나가느냐에 따라서 이 작품은 지구 종말을 바라보는 인간의 심리, 그 중에서도 우리 각자의 심리가 반영된 영화로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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